정운경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성숙(聲叔), 호는 청해(靑海). 강난수(姜蘭秀)는 단발령 이후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에서 대장 유인석(柳麟錫)의 종사관으로 활동하면서 재정을 담당하였다. 1896년(고종 33) 3월 박종문과 함께 단양에 있는 역토(驛土)에서 도조를 거두는 일을 하였고, 청풍의 오산(伍山) 쪽에 주둔하던 이강년(李康秊...
-
1894년(고종 31) 청일전쟁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일제는 다음 해인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후 친일 내각을 앞세워 조선 정부에 ‘내정 개혁’을 강요하였다. 또한, 11월에는 단발령을 시행하여 국민적 분노를 샀는데, 그것은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화서학파(華西學派)의 저명한 성리학자 유중교(柳重敎)가 강학하던 제천의 장담서사(...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권진(權璡)[?~1896]은 본관이 안동(安東)이며, 보수적인 성향의 선비로 1894년(고종 31)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을 정운경(鄭雲慶) 등과 함께 단양 영춘 현곡리의 동학 지도자들을 처단하는 등 활동을 하였다. 단발령이 내려진 후 유인석(柳麟錫)이 지도하는 호좌의진이 출범하자 정운경과 함께 참여하였고, 호좌의진에서 영남 지...
-
근대 정운호(鄭雲灝)가 제천의 명산인 감악산의 약수탕을 노래한 칠언 율시의 한시. 정운호[1862~1930]는 정양(鄭瀁)의 11세손으로, 의병장 정운경(鄭雲慶)의 삼종제이다. 향리의 이름 있는 한학자로 월림 정씨의 종손이다. 「금수약수탕(金水藥水蕩)」은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 백련사(白蓮寺) 마당에 있는 약수탕을 찬양한 작품으로, 그 샘물이 병자에게 효험이 있음을 노래했...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과 이범윤 의진의 의병. 김교헌(金敎憲)[?~1908]은 단양군 영춘 출신으로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한 관료이었으며, 1895년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지도하는 호좌의진에 참여하였다. 처음에는 전군장인 정운경(鄭雲慶)의 종사관으로 활동하다가, 후에는 제천 의병을 치러 오는 관군이 출동하였을 때 원주 신림 쪽을 방어하는 파수장으로 임명...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삼척(三陟). 본명은 김상호(金尙鎬), 자는 경륙(景六), 호는 백우(白愚). 아버지는 김병규(金丙奎)이다. 김상태(金尙台)[1862~1911]는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에서 태어났으며, 장성한 후 영월의 옥동으로 이주하였다. 단발령 이후 이강년(李康秊)과 함께 의병에 참여하였고, 호좌의진이 북상한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좇아...
-
충청북도 제천시 화산동에 있는 향토 문화 단체. 내제문화연구회는 제천 지역 문화 연구에 대한 조사 수집 및 발표를 통하여 지역 향토사를 정립하고, 지역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 법인 단체이다. 1987년 3월 14일에 회원 11명이 모여 내제문화연구회를 발족하였고, 2002년 11월 29일에 사단 법인으로 등록하였다. 그 후 대표자 및...
-
1894년 제천 지역에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 운동. 19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토호 세력의 횡포에 농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었고, 이에 따라 농민들의 봉기가 이어졌는데, 제천 지역의 경우 청풍에서의 농민 항쟁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 농민들의 불만을 결집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는 세력인 동학이 힘을 키우고 있었다. 제천 지역은 일찍부터 동학 세력...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관여(觀汝), 호는 회당(悔堂)·학림(鶴林). 박정수(朴貞洙)[1859~1917]는 유중교(柳重敎), 유인석(柳麟錫)의 문인으로 문장이 뛰어난 화서학파의 선비이다. 영월의 주천면 금마리, 단양의 석교, 제천의 청풍 등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장담의 선비들이 모여 처신 방법을 두고...
-
근대 정운호(鄭雲灝)가 감악산에 있는 백련사의 경치와 작자의 심정을 노래한 칠언 율시의 한시. 정운호[1862~1930]는 정양(鄭瀁)의 11세손으로, 의병장 정운경(鄭雲慶)의 삼종제이다. 향리의 이름 있는 한학자로 월림 정씨의 종손인 정운호는 금성 월림에서 가까운 백련사에 자주 들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그가 백련사를 소재로 많은 시를 쓴 데서도 알 수 있다. 정...
-
충청북도 제천 출신의 문인이자 의병장인 정운경의 문집. 정운경(鄭雲慶)[1861~1908]의 본관은 영일, 자는 화유(和有), 호는 송운(松雲)이다.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에서 태어났으며, 의병을 일으켜 활동하였다. 1977년 건국 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정운경이 남긴 많은 문적이 소실되었으나 후에 종손인 정원태(鄭元泰)가 수습하여 197...
-
정극유을 시조로 하고 정보연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영일 정씨의 원조는 신라 육촌(六村)의 하나인 자산진지부(觜山珍支部) 촌장인 지백호(智伯虎)이다. 지백호는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양육한 공으로 공신이 되었으며, 정씨 성을 하사받았다. 이후 후손들이 중간 계보를 잃어버려 족보 및 종친회를 각각 다르게 하는 두 파가 있다. 고려 의종 대의...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이강년 의진의 의병. 원덕상(元德常)은 본관이 원주(原州)이며, 지금의 제천시 봉양읍에서 살았다. 일본 기록에 따르면, 지금의 단양군 어상천면 연곡리 출신의 양반으로 친척인 보산에 살던 의병론자 원도상(元道常)과 왕래하면서 기맥을 통하였다. 의병 활동을 하면서부터 이름을 원건상(原建常)으로 고쳤다고 한다. 1905년(고종 42) 원용팔(元容八)이...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을 지원한 의병론자.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운거(雲居), 호는 치당(恥堂). 원용갑, 원용대, 원용일, 원용현 등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의병 운동을 펼쳤다. 원도상(元道常)[1848~1937]은 영춘의 보발마을에 살던 유학자이다. 재산가이었지만 배일사상을 가진 인물이었으며, 인근의 의병 지도자인 정운경(鄭雲慶)·장익환(張益煥...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시대에 원림부곡(員林部曲)이 있던 곳이므로 원리, 원림부곡 또는 월림이라 하였다. 풍수지리상 마을 생김새가 ‘월(月)’자형이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마을 중시조가 영일 정씨 월림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영일 정씨 시조 포옹(抱翁) 정양(鄭瀁)이 마을에서 하룻밤 머물 때 꿈에 달이 숲으로 떨어졌다는 설도 전한다. 조선 말...
-
1895년에서 1911년 사이 충청북도 제천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을미년[1895년] 말의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호좌의진이 봉기한 이래 1905년(고종 42)의 을사의병, 1907년(순종 1)의 정미의병에 이르기까지 제천 지역에서는 의병 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1895년(고종 32)에 있었던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 사...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우문(于文)·명오(明五), 호는 광암(廣菴)·광거재(廣居齋). 이규현(李奎顯)[1874~1951]은 단양 품달마을에 살았다. 무관의 집안에서 태어나 숙부이면서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인 이필희(李弼熙)에게 배웠고, 후에 장담에 출입하면서 유중교와 유인석(柳麟錫)에게도 배웠다. 단발령 이후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유인...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광국(光國). 이세영(李世榮)[1869~1951]은 지금의 제천시 두학동에 살았다. 단발령 이후 봉기한 호좌의진에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05년(고종 42) 정운경(鄭雲慶)이 봉기할 때도 협조하였다.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 이후에는 이강년(李康秊)이 재건한 호좌...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수겸(受謙), 호는 중재(中齋). 아버지는 호좌의진에서 선비들을 맞아들이는 직책인 사객(司客)이었던 장충식(張忠植)이다. 장익환(張益煥)[1866~1915]은 단양의 상진에 살았다. 유중교(柳重敎)의 제자인 이근원의 제자이다. 단발령 이후, 단양에서 의병을 준비하던 중 이춘영(李春永) 등이 봉기하여 단양...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중덕(仲德·重德), 호는 소송(小松). 정술원(鄭述源)[1860~1931]은 많은 의병론자를 배출한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 출신으로,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하는 호좌의진이 제천에서 활동할 때 대장 종사로 활약하였다. 1905년(고종 42) 초 유인석의 지시에 따라 일진회를 제어하기 위하여...
-
개항기 제천 출신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화백(和百), 호는 송운(松雲). 정운경(鄭雲慶)[1861~1939]은 강한 재지(在地) 세력을 갖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 재종순 정일원(鄭一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경제적으로는 빈한하여 영춘으로 이주하였으며, 관권이나 토호의 수탈로부터 농민들을 보호하려는 의협심을 내기도 하였다. 1894년(고종...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있는 여덟 곳의 명승지. 전국 각 지역에는 풍광이 아름다운 이른바 ‘팔경(八景)’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는 본디 『주역(周易)』의 팔괘(八卦)의 원리를 자연에 표상화한 자연의 실경을 시로 읊은 중국의 팔경 시 작시 전통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시대에 유입되었는데, 팔경 시와 그 대상이 되는 팔경은 설정자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
개항기 정운호(鄭雲灝)가 제천 지역의 팔경에 대해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제천의 유림들이 「소상팔경」을 본 따서 팔경을 선정했는데, 이는 ‘의림지 낚시하는 늙은이[林湖釣叟]’, ‘백련사 돌아가는 중[蓮寺歸僧]’, ‘대암에 노니는 물고기[帒巖遊魚]’, ‘관란정의 우는 여울[瀾亭鳴灘]’, ‘한벽루의 가을 달[碧樓秋月]’, ‘능강의 봄 돛단배[綾江春帆]’, ‘옥순봉 기암[玉...
-
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의병장 장익환의 문집. 장익환(張益煥)[1866~1937]의 본관은 인동이며, 자는 수겸(受謙), 호는 중재(中齋)이다. 아버지는 장충식(張忠植)이다. 유인석(柳麟錫), 정운경(鄭雲慶), 이강년(李康秊) 의병 부대에 참여하였다.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후손가에 전해 오던 관련 문건들을 모두 모아서 1982년...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사원(士遠), 호는 춘성(春城). 지원영(池源永)[1872~1906]은 제천의 상풍마을에 살았다. 젊어서부터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장담의 유중교(柳重敎)와 유인석(柳麟錫)의 문하에 출입하였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지고 관찰사의 지시를 받은 단양 군수가 단발을 촉구하자 처족인 장익환(...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홍대석(洪大錫)은 오위장(五衛將)을 지낸 전직 관료 출신으로 제천에 살았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호좌의진이 봉기하였을 때 참여하였다. 1896년(고종 33) 초 호좌의진이 충주성을 장악하였을 때 달천의 유주막을 지키는 파수장으로 적의 침입을 차단하는 공을 세웠다. 제천으로 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