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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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김제군에서 김제의 지리와 역사를 중심으로 일반 현황을 엮어 간행한 군지. 1994년 김제군과 김제시가 도농 복합 통합시로서 출발하기 전에 김제군의 행정구역은 물론, 생활문화권으로서의 김제군의 지역성을 남기려는 차원에서 『김제군사(金堤郡史)』를 간행하게 되었다. 1권 1책이며 1,472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크기는 가로 21.8㎝, 세로 30.4㎝이다. 제1편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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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향토문화에 관한 자료를 모은 책. 『김제의 문화재』는 김제 지역의 문화재 관련 향토사 서적으로, 김제문화원에서 1999년 초판, 2006년 개정판을 간행하였다. 『김제의 문화재』는 단행본 1권으로 총 200쪽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제의 문화재』는 김제시의 연혁, 문화재 현황, 등록취소 문화재, 김제 고지도, 새만금의 기원, 목조건물 명칭, 석탑 및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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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던 만경현의 현령 김현이 작성한 조선 후기 수령의 관외 업무일지. 조선시대 수령은 관내뿐만 아니라 관외에서도 지방의 통치를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수행하였다. 수령들의 일기가 잇달아 발굴되면서 수령들의 관외 업무가 관내 업무만큼이나 비중이 높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는데, 『만경일기』는 17세기 중반 전라도 만경현의 현령을 지냈던 김현이 당시 수령들의 관외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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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김제문화원에서 김제시의 역사와 문화유산 등을 기록으로 남긴 자료집. 1999년 초판을 찍은 데 이어 2000년 재판, 2002년 증보판을 간행하였다. 1권 1책으로, 모두 218페이지로 이루어져 있다. 표제는 벼골의 문화유산(벼골의 文化遺産)이다. 크게 ‘김제시의 연혁’, ‘김제의 고지도’, ‘문화재 범례’, ‘김제에서 가볼 만한 곳’, ‘우리 고장 문화유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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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에 설치된 조선시대 국영 숙박시설. 원(院)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공무로 여행하는 관원들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박시설로서 설치 시기나 운영 방법 등은 확실하지 않다. 각 주(州)·현(縣) 내의 관(館)과는 구별된다. 건물은 원우(院宇)라고 했다. 원은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고려시대에는 원이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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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규를 시조로 하고, 함흥달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강릉함씨(江陵咸氏)의 시조인 함규(咸規)는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삼국 통일에 공을 세워 익찬개국공신(翊贊開國功臣)으로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태위(太尉)에 책록되었으며, 벼슬이 광평시랑평장사(廣評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함씨가 강릉을 본관으로 삼은 것은 함규의 후손 함제(咸濟)가 강릉에 세거하게 된 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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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신천강씨 김제 입향조. 본관은 신천(信川). 호는 봉호(鳳湖). 증조할아버지는 고려 후기 삼중대광도첨의우정승(三重大匡都僉議右政丞)을 지낸 강숙(康叔)이고, 할아버지는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를 지낸 상산백(象山伯) 강서(康庶)이다. 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강윤(康允)이다. 강원기(康元紀)는 1348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신천강씨대동보(信川康氏大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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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전통시대와 현대에 지어진 건축물. 건축이란 집이나 성, 다리 따위의 구조물을 그 목적에 따라 설계하여 흙·나무·돌·벽돌·쇠 따위를 써서 세우거나 쌓아 만드는 일이다. 김제시의 건축 유구(遺構)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작문화(稻作文化)의 특징에 걸맞게 삼국시대 축조된 수리 시설부터 그 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대표적인 유적이 벽골제이다. 이후 금산사가 창건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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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김제 지역 역사. 고려 전기는 실상 호족 시대의 후반기로, 왕조의 통치에 많은 한계가 있었다. 고려는 1018년(현종 9)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항구적인 지방통치 제도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 이전에도 여러 제도가 시도되기는 하였지만, 이때 와서 모든 고을의 이름이 중국식 한자명으로 다시 바뀌었다. 바뀐 기준은 757년에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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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에서 산이나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 먼저 조금 떼어 던지면서 외치는 소리. ‘고시레’라는 말은 감탄사다. 지방마다 유래가 좀 다르지만 거의 들이나 산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준비해간 음식 중에서 하얀 밥 같은 것을 던지면서 외치는 소리다. 고시레를 외치면서 음식을 던지는 행위는 우리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풍속 중의 하나다. 이런 행위는 대개 봄철에 모내기를 할 때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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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에 있는 자연마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마을의 위치는 만경면 남쪽 13리이며, 백제시대에는 무근촌현(武斤村縣)으로 부르다가 신라시대에 무읍(武邑)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김제군 관할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부윤현(富潤縣)으로 바뀐 뒤 잠시 임피현에 속하였다. 그 후 만경현(萬頃縣)에 속하였다가 현이 폐지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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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공덕면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전라북도 김제시를 구성하는 1개 읍[만경읍], 14개 면[죽산면, 백산면, 용지면, 백구면, 부량면, 공덕면, 청하면, 성덕면, 진봉면, 금구면, 봉남면, 황산면, 금산면, 광활면], 4개 행정동[요촌동, 신풍동, 검산동, 교월동] 중 공덕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공덕면사무소는 공덕면의 행정 서비스와 주민 복리 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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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효자 곽효각의 정려. 곽효각(郭孝恪)은 곽채규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아버지 곽채규가 오래도록 아들이 없다가 느지막하게 얻은 아들이다. 곽효각은 이름에도 ‘효(孝)’자가 들어갔듯이 하늘이 내린 효자로서, 지극 정성으로 부모에 대한 효를 실천궁행하여 만경현(萬頃縣)의 유림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되었다. 곽효각 정려는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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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년부터 1994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백제가 멸망하면서벽골군은 757년(경덕왕 16) 중국식 한자명인 김제군으로 개칭되었다. 1018년(현종 9) 현으로 격하되었고, 1403년(태종 3) 김제현에 지군사[1466년 군수로 개칭]를 두었고, 1466년(세조 12) 김제군으로 승격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1670년 발간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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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중앙부 서쪽에 있는 시. 김제시는 동쪽으로 노령산맥(蘆嶺山脈) 주능선을 경계로 완주군, 남쪽으로 동진강(東津江)을 경계로 정읍시·부안군, 북쪽으로 만경강(萬頃江) 및 그 하구를 경계로 익산시·군산시와 이웃하고, 서쪽은 서해와 닿아 있다. 경위도상 북위 36°, 동경 127°의 교차점에 자리 잡은 도시로 위도로는 북위 35° 40′~35° 55′, 경도로는 동경 12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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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중앙부 서쪽에 있는 시. 김제시는 동쪽으로 노령산맥(蘆嶺山脈) 주능선을 경계로 완주군, 남쪽으로 동진강(東津江)을 경계로 정읍시·부안군, 북쪽으로 만경강(萬頃江) 및 그 하구를 경계로 익산시·군산시와 이웃하고, 서쪽은 서해와 닿아 있다. 경위도상 북위 36°, 동경 127°의 교차점에 자리 잡은 도시로 위도로는 북위 35° 40′~35° 55′, 경도로는 동경 12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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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3년부터 1403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지금의 김제시는 삼한시대에 벽비리국(辟卑離國)이 있었던 곳으로 비정된다. 백제가 이 지역을 차지한 뒤 벽골군(碧骨郡)을 설치했고, 백제 멸망 후 당(唐)이 벽성(辟城)으로 고쳐 고사주(古四州)[현재의 고부]의 영현을 삼았다. 757년 통일신라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김제군으로 바꾸고 전주에 예속시켰다. 이때 평고현(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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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있었던 역원. 김제 지역은 백제의 벽골군(碧骨郡)인데 신라 때 김제군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전주의 속현(屬縣)이었다가, 1143년(인종 21) 현령을 두었다. 1403년(태종 3) 김제현 출신인 명나라 환자(宦者) 한첩목아(韓帖木兒)의 요청으로 군으로 승격되었다. 김제군의 동쪽으로 금구현(金溝縣) 경계까지 14리, 남쪽으로 태인현(泰仁縣) 경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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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개항기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국영 숙식 시설. 원(院)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공무로 여행하는 관원에게 숙식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설치한 국영 숙식 시설로, 설치 시기 및 운영 방법 등은 확실하지 않다. 각 주(州)·현(縣) 내의 관(館)과는 구별된다. 건물은 원우(院宇)라고 했다. 원은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해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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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이자 두릉두씨(杜陵杜氏)의 중시조. 아내는 상장군 문유보(文儒寶)의 딸이고, 사위는 장군 유삼백(柳森栢)이다. 두경승(杜景升)은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과 청하면, 진봉면, 공덕면, 성덕면 일대의 고려 후기 행정구역인 만경현(萬頃縣) 사람이다. 고려 의종 때 공학군(控鶴軍)에 뽑혔다가 대정(隊正)으로 후덕전(厚德殿)의 견룡(牽龍)이 되었다. 무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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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두곡서원(杜谷書院)은 성리학자 강원기(康元紀)[1423~1498]의 거처가 있던 곳으로, 배향되어 있는 사람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봉호당 문헌공 강원기, 난계 성전림(成傳霖) 등이다. 성리학자 강원기는 야은(冶隱) 길재(吉再), 정몽주와 더불어 경전을 읽어 유풍(儒風)을 크게 진작시켰다. 그가 경원과 은성 두 고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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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청하면·진봉면·공덕면·성덕면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백제 초기에는 지방 통치가 지역 부족 수장들의 자치적 기능에 맡겨져 왔다. 고이왕 이후에 5부 체제가 갖추어지면서 그들이 점차 중앙 귀족화되어 부에 편입되었고, 지방 통치가 이들을 통한 간접적인 지배 형태로 행해지면서 두내산현(豆乃山縣)으로 개칭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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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경령을 시조 및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두릉두씨(杜陵杜氏)의 시조 두경령(杜慶寧)은 송(宋)나라에서 병부상서를 지내다가 고려시대에 만경(萬頃)을 식읍지로 하사받았다. 만경은 백제 때는 두내산현(豆乃山縣)이라 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만경현(萬頃縣)이라 하였다. 고려 문종 때 현내 주산(主山)에 두씨 2세조 두지건(杜之建)을 장사지냄으로써 산 이름을 두산(杜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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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에서 발원하여 김제시를 지나 서해의 새만금으로 흘러드는 하천. 만경강 유역의 수리 시설과 치수사업은 우리나라 8대 오지로 불리는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에 1923년 동상저수지를 축조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1988년에는 동상저수지 아래에 20m를 높여 대아저수지를 축조하였다. 1925~1930년에는 직강(直江) 공사, 1935년 경천저수지 축조, 1930~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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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에서 발원하여 김제시를 지나 서해의 새만금으로 흘러드는 하천. 만경강 유역의 수리 시설과 치수사업은 우리나라 8대 오지로 불리는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에 1923년 동상저수지를 축조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1988년에는 동상저수지 아래에 20m를 높여 대아저수지를 축조하였다. 1925~1930년에는 직강(直江) 공사, 1935년 경천저수지 축조, 1930~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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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14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고종은 동학 농민 운동이 모두 진압되고 난 후 지방 행정구역 제도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1895년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였다. 이때 만경현과 금구현이 군으로 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만경군·금구군은 김제군과 함께 전주부[관찰사]에 속하게 되었다. 1896년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가 실시됨에 따라 3개 군은 전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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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제를 시조 및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만경김씨(萬頃金氏)는 신라 김알지의 후예로 김희제(金希磾)가 시조이자 입향조이다. 김희제는 충청도안찰사(忠淸道按察使)를 거쳐 장군이 되었는데, 1221년(고종 8) 의주분도장군(義州分道將軍)으로 있을 때 우가하(于哥下)가 침입하자 이를 격퇴했다. 또 1226년 서북병마사(西北兵馬使)로 있을 때 의주·정주 지방에 쳐들어온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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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동산에 있는 전망대. 만경읍에 위치한 동산(東山)[58m]은 만경읍사무소 뒤편[북쪽], 김제와 군산을 연결하는 국도 29호선과 만경읍과 백산면을 연결하는 지방도 702호선 사이에 위치한다. 백제시대에는 만경현(萬頃縣)의 이름이 두내산(豆乃山) 또는 두릉이라 불렸기 때문에 일명 두산이라고도 한다. 산중턱에는 두릉두씨 시조 2세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만경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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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만경(萬頃)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밭 사이의 경계[두둑]가 만 개라는 뜻인데, 이는 곧 들이 넓다는 뜻이다. 그만큼 경작지가 광활함을 일컫는 말이다. 만경리 남쪽에 김제시에서 가장 넓은 능제저수지(菱堤貯水池)가 있어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조선 말기 만경군 군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신·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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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만경(萬頃)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밭 사이의 경계[두둑]가 만 개라는 뜻인데, 이는 곧 들이 넓다는 뜻이다. 그만큼 경작지가 광활함을 일컫는 말이다. 만경리 남쪽에 김제시에서 가장 넓은 능제저수지(菱堤貯水池)가 있어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조선 말기 만경군 군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신·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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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와 고려·조선 때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현재 김제 지역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 당시 이곳에는 당시 벽골·두내산·무근촌(武斤村)·수동산(首冬山)·내리아(乃利阿)·구지지산(仇知只山)·야서이(也西伊) 등의 고을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 백제 영토였는지, 지방 행정 체제가 어떠하였는지는 잘 알 수 없다. 통일신라는 757년(경덕왕 16) 당의 방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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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현재 김제 지역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 당시 이곳에는 당시 무근촌현(武斤村縣) 이외에 벽골·두내산·수동산(首冬山)·내리아(乃利阿)·구지지산(仇知只山)·야서이(也西伊) 등의 고을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 백제 영토였는지, 지방 행정 체제가 어떠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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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현재 김제 지역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 당시 이곳에는 무근촌현(武斤村縣) 이외에 벽골·두내산·수동산(首冬山)·내리아(乃利阿)·구지지산(仇知只山)·야서이(也西伊) 등의 고을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 백제 영토였는지, 지방 행정 체제가 어떠하였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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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현재의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 고현마을과 부서울마을 일대가 과거 부윤현의 위치이다. 성덕리의 중심이 되는 마을로 신비한 전설을 간직한 ‘부설각시’가 태어난 곳이라 하여 ‘부서울’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는데, 『동국여지승람』에 만경면 남쪽 13리에 위치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명이 지금도 고현과 부윤으로 부르는 점 등 여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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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봉면 심포리 심포항(深浦港)과 망해사(望海寺)는 드넓은 서해의 풍광과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김제시의 중요한 문화적·역사적 자원으로 일망무제한 김제 지평선의 일단을 장식하는 중요한 문화 관광지로 꼽힌다. 옛 문헌에서 심포라는 지명을 찾아볼 수 없지만, 조선시대 지방 지도 등에는 이 지역이 하일도(下一道)로 표기되어 있다. 심포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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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적의 습격에 대비해 흙이나 돌로 축조한 방어 시설. 고대로부터 일정 지역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자연적·인공적 외부 침략에 대비하며 스스로 거주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인공적인 구조물을 축조해 왔다. 성곽이란 ‘군사적·행정적인 집단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거주하면서 공동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그 구조물이 연결성을 갖는 전통 건조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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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덕산(聖德山)에서 이름을 따서 성덕리(聖德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김제군 만경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모산·나시·남포 각 일부, 상서면 부동·정동을 병합하여 성덕리라 하고 김제군 성덕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가 되었다. 남쪽으로는 김제시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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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 교동 일대에 자리 잡은 성산(城山)은 김제시의 주산으로 해발 고도 30~41m의 야트막한 구릉 산지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사방 약 40㎞를 관망할 수 있다. 성산 주위에는 사적 제482호인 김제군 관아와 향교, 벽성서원(碧城書院), 용암서원(龍巖書院), 홍심정(紅心亭) 등 김제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전통문화 유교 자산이 잘 남아 있어 김제시의 정체성을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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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개항기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국영 숙식 시설. 원(院)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공무로 여행하는 관원에게 숙식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설치한 국영 숙식 시설로, 설치 시기 및 운영 방법 등은 확실하지 않다. 각 주(州)·현(縣) 내의 관(館)과는 구별된다. 건물은 원우(院宇)라고 했다. 원은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해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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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재화 및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우리나라 시장의 역사는 고대 사회에서도 엿볼 수 있다. 시장 형성은 신라,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1399년(정조 1)에는 최초로 한양에 왕실과 각 아문의 공·사적 상품 수요를 위한 시전(市廛)을 설치하였다. 이는 난전(亂廛)과 육의전(六矣廛)의 시초가 되었으며, 시전은 한양뿐 아니라 지방의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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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라북도 김제시의 변천 과정. 전라북도 중앙부의 서쪽에 위치한 김제시는 동쪽으로 노령산맥의 주능선을 경계로 완주군과, 남쪽으로는 동진강을 경계로 정읍시 및 부안군과, 북쪽으로는 만경강 및 그 하구를 경계로 익산시·군산시와 인접하며, 서쪽으로는 서해에 접하고 있다. 김제의 자연환경을 보면 동부에 노령산맥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높이 500~700m의 산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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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에 있는 자연마을. 여관을 비롯하여 여인숙·주막 등이 있었고, 서원(書院)에서 유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모여 살았다 하여 원거리(院巨里)라 하였다. 또한 이곳에 죄인들의 사형을 집행하는 터가 있어 백성들의 원망이 높았기 때문에 원거리(怨巨里)라고도 하였다. 동산(東山)[60m], 사직산(社稷山)[25m], 능제저수지(菱堤貯水池)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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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을 시조로 하고, 김주학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의성김씨(義城金氏)의 시조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이며, 고려 태조의 외손인 김석(金錫)이다. 김석이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의성(義城)을 본관으로 삼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크게 번창했다. 입향조 김주학(金柱學)은 경상북도 안동에서 대대로 세거하였다. 26세손 김기렴(金寄濂)이 충청남도 보은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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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김제시는 전라북도 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동쪽은 전주시·완주군, 남쪽은 정읍시·부안군, 북쪽은 익산시·군산시, 서쪽은 황해에 접해 있다. 김제시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곡창 지대인 김제-만경평야의 중심을 이루어 온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 시설인 벽골제[사적 제111호]가 자리하고, 농경문화 체험을 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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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김제시는 전라북도 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동쪽은 전주시·완주군, 남쪽은 정읍시·부안군, 북쪽은 익산시·군산시, 서쪽은 황해에 접해 있다. 김제시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곡창 지대인 김제-만경평야의 중심을 이루어 온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 시설인 벽골제[사적 제111호]가 자리하고, 농경문화 체험을 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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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한일병합으로부터 1945년 8·15 해방에 이르는 기간의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역사. 한일병합은 1910년 8월 29일 우리나라가 일제 침략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고 일제의 식민지로 강제 편입된 사건으로 경술국치(庚戌國恥) 또는 일제병탄(日帝倂呑)이라고도 한다. 일제는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이후 1945년 8월 15일의 해방에 이르기까지 한민족 말살 정책과 식민지 수탈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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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의 조선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왜군의 침략으로 시작된 임진왜란은 초기에는 왜군의 일방적인 북상이 계속되었다. 풍부한 전쟁 경험과 조총으로 무장한 대규모 왜군은 당일에 부산성을 점령하고, 계속 북상하여 같은 해 5월 2일에 한양을 함락시키기에 이르렀다. 침공한 지 20여 일 만에 한양을 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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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개항기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국영 숙식 시설. 원(院)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공무로 여행하는 관원에게 숙식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설치한 국영 숙식 시설로, 설치 시기 및 운영 방법 등은 확실하지 않다. 각 주(州)·현(縣) 내의 관(館)과는 구별된다. 건물은 원우(院宇)라고 했다. 원은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해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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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개항기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국영 숙식 시설. 원(院)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공무로 여행하는 관원에게 숙식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설치한 국영 숙식 시설로, 설치 시기 및 운영 방법 등은 확실하지 않다. 각 주(州)·현(縣) 내의 관(館)과는 구별된다. 건물은 원우(院宇)라고 했다. 원은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해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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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의 산이 길게 뻗어 있다 하여 장산리(長山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만경군 군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죽·용동·농촌·대동·산본 각 일부, 북면 송상리 일부를 병합하여 장산리라 하고 김제군 만경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만경면에 속하게 되었고, 동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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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몽산리에 있던 자연마을. 군산 방면에서 만경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장승이 서 있었기 때문에 장승배기라 하였다. 과거 만경현의 읍치인 만경읍에서 청하면 또는 군산의 옥구현으로 가는 길목에 있던 마을로 만경강(萬頃江)과 가깝다. 과거에는 장승배기와 이웃한 몽포까지 배가 드나들던 포구여서 육상과 해상 교통로가 교차하는 곳에 자리 잡은 전형적인 주막촌이었을 것으로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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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일제강점기 전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김제의 역사. 조선시대 지방 통치제도는 이미 태종 대[1400~1418년]에 대개 확립되었고, 세조 대[1455~1468]에 일부가 개정되었으며, 이것이 그대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실리게 되었다. 김제 지역에는 조선시대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는데 우선 1403년(태종 3)에 김제현이 군으로 승격되었다. 1415년(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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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에 있는 조앙사 신도회. 조앙사(祖仰寺)는 미륵부처를 본존으로 하고, 무량대도(無量大道)를 종지로 하여 성심·수도·주문·견성·해탈을 강령으로 하는 대화교(大華敎)의 본부이다. 일제강점기 조앙사에는 대화교의 포교당이 있어 현세에서 고통 받는 이들에게 희망을 밝혀줄 미륵불을 신앙하고 전파하였다. 근대기 한국 불교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던 증거로 당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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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에 있는 한국불교 화엄종 소속 사찰. 현재 흔적은 남아 있지 않으나 진묵사(震默寺) 근처에서 진묵대사(震默大師)가 탄생되었다는 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진묵사는 실질적으로 조앙사(祖仰寺)의 조사전(祖師殿) 역할을 하고 있으며, 현판도 ‘진묵조사전’으로 되어 있다. 진묵사는 1928년에 창건되었고 그 뒤 1930~1940년대에 김상률이 만경현의 동헌 건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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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행정구역.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진봉산(進鳳山)[72m]의 이름을 따서 진봉면(進鳳面)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만경군 상서면(上西面) 지역으로 상궐·하궐·신기·석교·하수내·갈전·정서·가실·정동·부동·다상·다하·신회·효정·정당 등 1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일도면(下一道面) 부흥·규동·심포·남하·남상·안하·길곶·거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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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만경현에 속한 선유도를 기지로 삼아 왜구를 크게 물리친 해상 전투. 1380년(우왕 6) 8월 왜구는 부족한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전라북도 금강 하류 진포를 거점으로 내륙으로 침입하였다. 당시 고려는 최무선(崔茂宣)[1325~1395]이 발명한 화포를 주무기로 효과적인 대응을 하였는데, 이때 해전 기지로 삼은 곳이 당시 만경현에 속해 있던 고군산군도의 선유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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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대청리에 있는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청운사(靑雲寺)는 19세기에 승려 보천이 단칸의 초가집을 짓고 주석한 것에서 시작된 이후 이곳의 샘물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청운사 하소백련으로 유명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조선 말기 한 고승이 충청도에 있는 계룡산에서 바라보니 서광이 비치는 곳이 있어 보니, 김제평야의 모서리였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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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국명(國明), 호는 운정(篔亭)이다. 고려 충숙왕조에 평장사를 지낸 문성공(文成公) 완산군(完山君) 최아(崔阿)가 비조(鼻祖)이다. 고려조에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특진함경감사겸병마수군절도사(特進咸鏡監司兼兵馬水軍節度使), 순찰사(巡察使), 함흥부윤(咸興府尹) 등을 지낸 최진손(崔震孫)이 그 현조(顯祖)이다.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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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음양오행설에 기초하여 설명하는 이론. 풍수는 산천(山川)·수로[水流]의 모양을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에 연결시켜 설명하는 학설로, 이를 체계화한 것이 바로 풍수지리 사상, 풍수설, 풍수지리설 등으로 정착되었다. 즉 풍수지리는 지형이나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결시켜 죽은 사람을 묻거나 집을 짓는 데 알맞은 장소를 구하는 이론이다. 풍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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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영위해 온 삶의 내력을 기록한 책. 향토지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룩해 낸 주체와 객체 그리고 매개체의 유기적 관계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단순한 향토사에 머물지 않고 지리·풍속·문학·예술·행정 등 향토에 관한 모든 사상(事象)을 기록하는 것으로 그 의미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김제 지역과 관련되어 있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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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에서 활동한 효자.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몽촌(夢村). 할아버지는 홍처심(洪處深)이며, 아버지는 임피현감을 지낸 홍수제(洪受濟)이다. 형은 만경현에서 진사에 합격한 홍우현(洪禹賢), 동생은 사간원대사간을 지낸 홍우전(洪禹傳)이다. 담와 홍계희의 큰아버지이다. 홍우천이 세상을 떠나자 홍우전은 큰아들 홍계록(洪啓祿)을 그에게 입양시켜 대를 잇게 하였다. 하지만 홍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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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개항기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국영 숙식 시설. 원(院)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공무로 여행하는 관원에게 숙식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설치한 국영 숙식 시설로, 설치 시기 및 운영 방법 등은 확실하지 않다. 각 주(州)·현(縣) 내의 관(館)과는 구별된다. 건물은 원우(院宇)라고 했다. 원은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해 중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