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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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化-藝術 |
영어의미역 | Culture and Art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홍식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국악, 미술, 문학, 사진, 음악, 무용 등의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개설]
전라북도 김제시는 예부터 넓은 금만경평야를 끼고 있어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넉넉한 고장이었다. 이러한 풍요로움 속에서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이 분야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었다. 특히 시(詩)·서(書)·화(畵)와 국악의 수준은 가히 본고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며, 문학 등 다른 장르도 예외일 수 없다.
[국악]
정노식(鄭魯湜)이 쓴 『조선창극사』에 언급된 89명의 국악인 중 60여 명이 전라북도 지역 출신일 정도로 전라북도는 명실상부한 국악의 중심지였다. 김제 지역 역시 많은 국악인들을 배출하였다. 한국 판소리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모흥갑(牟興甲)은 경기도 안성의 죽산 혹은 진위라고 하며, 전라북도 전주가 고향이라는 설도 있으나 김제시 죽산면 출신으로 많이 소개되고 있다.
모흥갑은 고종에게 명고(名鼓)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명성을 날렸는데, 동지(同知)의 벼슬을 제수 받은 후 평양감사 김병학(金炳學)의 초청을 받아 선비 차림으로 가창을 하는 풍속도를 만들어 낸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뒤를 이은 인물로 조인갑을 들 수 있다.
소리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 김제농악[김제우도농악]이다. 박판열은 설장고의 명인으로 안재홍·이명석에게 사사했으며, 김제입석농악단을 조직하였다. 1996년 3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7-3호로 지정된 김제우도농악 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다. 김제국악원은 1966년 탄생했으며, 김제시우회는 1964년 발족하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미술]
김제 지역에는 특히 서화로 유명한 사람이 많다. 직업적인 화공이 아니라 선비 출신의 서화가들이 여기(餘技)를 즐기며 맥을 이어온 것이다. 17세기의 송일중(宋日中)을 비롯하여, 18세기에 서역의 풍물을 40여 척의 병풍으로 남긴 조진호(趙鎭祜), 19세기의 이정직(李定稷)과 조주승(趙周昇) 등이 그 주인공이다. 20세기 중엽까지는 조기석(趙沂錫)과 조병헌(趙秉憲), 그리고 호남의 거유 송기면(宋基冕), 전서(篆書)에 능한 최규상(崔圭祥), 묵죽(墨竹)을 잘한 유영완(柳永完), 난죽(蘭竹)의 대가 김정기(金正基), 풍죽(風竹)과 오체(五體)에 능한 송성용(宋成鏞) 등이 그 맥을 이어왔다.
서양화로는 인물과 풍경에 능한 유병희(柳秉熙),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일명 국전] 초대작가를 역임한 강대운(姜大運)·장완(張完)이 유명하다. 한국화에는 나상목(羅相沐)·송계일(宋桂一) 등이 활동했으며, 건축가로는 나상진(羅相振)이 있었다.
[문학]
김제 지역에서 활동한 인물로는 16세기 전후의 이계맹(李繼孟)을 들 수 있는데, 그는 문예에 뛰어난 문신이었다. 19세기 말엽에 활동한 최보열(崔輔烈)은 고문과 시문에 능통하였다. 20세기 중엽까지는 송수용과 최학규 등이 활동했으며, 1948년에는 장영창이 전라북도 지역에서는 두 번째로 시집 『어느 지역』을 발간하였다. 1957년 발간된 『시신』에는 최학규·이병기·송하선 등이 시를 수록하였고, 1959년 창간된 『문인의 집』에는 최학규와 장영창의 작품이 실렸다. 1970년대에는 한국문인협회 김제지부가 탄생되었고, 『벽골문학』·『김제문학』 등이 창간되었다. 1996년에는 김소이가 『거울 보는 여자』로 민음사에서 주관하는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였다.
[사진]
사진협회 회원이었던 김훈이 군산에서 김제로 오면서 각자 활동해 오던 박도현·한명선이 함께 한국사진작가협회 김제지부를 결성하고, 초대 지부장에 박도현을 선출하여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김훈은 1971년 12월 김제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어 지역 사진가들에게 새로운 기풍과 의욕을 불어넣었다. 1975년에는 김제사우회가 출범하여 창립전에 19명의 회원이 46점의 작품을 출품하였다. 또한 변산반도 촬영대회, 벽골제 사진촬영대회, 금산사 벚꽃촬영대회, 작품전시회, 초대전 등 각종 촬영대회도 개최하여 지역 사진계의 한계를 극복하였다.
[음악]
김제 지역에 서양 음악이 본격적으로 전파된 시기는 1930년대였고, 구체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1940년대였다. 당시 11인조 관현악단이 창립되었으며, 1945년 이후에는 10인으로 구성된 기악부와 4인으로 구성된 성악부가 활동하였다. 그 후 1973년 향토문화예술제에 합창·독창·피아노 연주 등으로 참여하였고, 1974년 12월에는 한국음악협회 김제지부가 창립되었다. 김제 지역 음악인들은 음악과 무용 공연, 음악제, 김제예술제 음악발표회, 교사음악회, 송년음악회, 음악발표회 등을 통하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무용]
김제 지역 무용은 1987년 4월 ‘한국현대무용학원’이 설립되면서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무용에 대한 인식 부족과 정치·경제적 혼란으로 명맥만 겨우 유지하였다. 그 후 1997년 12월 자체적으로 창작한 「큰어미 단야」를 김제예술회관에서 선보이며 무용 분야의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큰어미 단야」는 당시 만경여자중학교와 만경여자고등학교 교사로 활동하던 조향숙의 노력으로 맺어진 결과였다. 1999년 2월에는 한국무용협회 김제지부가 설립되었다.
[기타의 문화 활동]
김제 지역에서는 현재 여러 종류의 문화 축제가 개최되어 찬란했던 과거의 문화예술을 재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축제 및 행사로, 1960년부터 시작된 ‘김제군민의 날’이 ‘벽골문화축제’로 이름이 바뀌어 개최되고 있으며,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존재하는 김제 지역의 특징을 살린 ‘김제지평선축제’ 등이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