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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수확한 벼를 훑을 때 쓰던 농기구. 벼훑이는 지역에 따라 ‘훌치개’, ‘손그네’, ‘베훌깨’, ‘손홀깨’, ‘홀깨’, ‘가락홀태’로 부르며, ‘훌태’, ‘훌추이’, ‘벼치기’, ‘홀태’라고 하는 곳도 있다. 빗처럼 생긴 것은 ‘손홀태’라 하고 집게 같은 것은 ‘가락홀태’라고 부른다. 그리고 ‘손홀태’는 뒤에 ‘그네’로 발달 되었다. 이와 비슷한 것에 ‘짚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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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흙을 파헤치거나 떠서 던지는 데 쓰는 농기구. 가래는 삽날을 끼운 넓적한 몸에 긴 자루를 박고 날 양편에 줄을 매어 사용한다. 한 사람은 장부[자루]를 잡고 둘 또는 넷이나 여섯 등의 사람이 밧줄을 당겨 흙을 파서 멀리 던진다. 옛날부터 두레 농업이 발달한 우리나라는 이런 식으로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일하는 고유의 연장이 많은데, 가래는 그중 하나이며 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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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곡식이나 소금 따위를 담기 위하여 짚을 돗자리 짜듯이 쳐서 만든 용기. 가마니가 들어오기 전 우리나라에서는 섬을 썼다. 하지만 섬은 날 사이가 성겨서 낱알이 작거나 도정된 곡물은 담지 못하고 오직 벼·보리·콩 등만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많은 양을 담을 수 있었으나, 무거워서 한 사람이 들어 옮기기 어려웠다. 그에 비하여 가마니는 한 사람이 나르는 데 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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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볏짚으로 곡물·비료·소금 등을 담는 가마니를 짰던 기계. 가마니는 원래 일본 것이었다. 일본말로는 ‘가마스’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와 가마니가 되었다. 우리말로는 ‘섬’이라고 불렀다. 19세기 말 우리나라에 많이 와 있던 일본 사람들은 자국보다 싼 우리나라 쌀을 가지고 장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벼를 가공하여 쌀로 유통했는데, 우리나라 섬에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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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있는 장소. 집안 사당은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신 곳으로 제례를 드리는 공간이다. 이를 ‘가묘(家廟)’라고도 한다. 김제 지역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조상에 제사를 지낼 때에 방안 제사를 지내기도 하지만, 갖추어 놓고 사는 집에서는 사당에 신위를 모셔서 제례를 행하는 경우도 있다. 사당의 위치는 일정치 않으나 대부분 집안 후원의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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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음력 8월 15일에 행하는 세시풍속. 추석은 중추절(中秋節)이라고 하여 가을의 한가운데 달이며, 또한 팔월의 한가운데 날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명절이다. 이를 ‘가배(嘉俳)’, ‘한가위’ 등이라고도 한다. 추석은 설날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2대 명절이다. 이때쯤에는 백과가 만발하기 때문에 농촌에서는 최고의 명절로 친다. 일 년 내내 물자가 귀하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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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실리(加實里)는 조선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마을로 당시에는 큰동네·서당넘·달동네·새터 등으로 불렸다. 조선 말기 만경군 상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정서리·정동리·부동·석교리 각 일부, 남이면 모산리·나시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가실리라 하고 김제군 진봉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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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음력 8월 15일에 행하는 세시풍속. 추석은 중추절(中秋節)이라고 하여 가을의 한가운데 달이며, 또한 팔월의 한가운데 날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명절이다. 이를 ‘가배(嘉俳)’, ‘한가위’ 등이라고도 한다. 추석은 설날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2대 명절이다. 이때쯤에는 백과가 만발하기 때문에 농촌에서는 최고의 명절로 친다. 일 년 내내 물자가 귀하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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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하동에 있는 재활 전문 요양 병원. 가족사랑요양병원은 환자 중심의 맞춤 치료와 양방과 한방의 통합 협진을 통한 진료를 하기 위해 2008년 3월 17일 재활 전문 요양 병원으로 설립되었다. 자연 친화적 병원 환경으로 질병 치료와 심신 요양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고, 환자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임종 호스피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양방[내과·재활의학과·신경외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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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찹쌀·멥쌀·보리·밀가루 등을 쪄서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킨 농주. 막걸리는 예부터 각 지방의 관인 양조장에서만 생산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농가에서 개별적으로 제조하여 애용하기도 했다. 발효할 때 알코올과 함께 유산균이 생성된다. 빛깔이 뜨물처럼 희고 탁하며, 6~7도로 알코올 성분이 적은 술이다. 막걸리는 탁주(濁酒) 또는 탁배기라고도 하는데, 원래 고두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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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승려이자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간산(艮山). 속명은 김금택(金金鐸), 법명은 택성(宅成·鐸聲), 법호는 탄허(呑虛).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인 율재(栗齋) 김홍규(金洪奎)이며,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탄허(呑虛)[1913~1983]는 지금의 김제시 만경읍 대동리에서 태어났다. 불교에 입문하기 전 기호학파의 최익현(崔益鉉) 계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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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속하는 법정동. 갈공동(葛公洞)은 이곳에 있던 갈공사(葛公寺)라는 절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1914년 이전에는 김제군 대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김제면에 편입되었다. 1931년 김제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김제읍 갈공리가 되었다. 1989년 김제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교동 관할의 법정동인 갈공동이 되었다가, 1998년 교동과 월촌동이 통합되어 교동월촌동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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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정읍시 감곡면에 있는 호남선 철도역. 감곡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감산면의 ‘감’과 사곡면의 ‘곡’을 합쳐 ‘감곡’이라고 한 데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이에 따라 역명도 지역 명칭에 따라 감곡역이 되었다. 감곡역은 1958년 10월 20일 역원 배치 간이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감곡역은 김제역과 정읍시의 신태인역 사이에 위치한 간이역으로, 1958년부터 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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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에 설치된 조선시대 국영 숙박시설. 원(院)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공무로 여행하는 관원들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박시설로서 설치 시기나 운영 방법 등은 확실하지 않다. 각 주(州)·현(縣) 내의 관(館)과는 구별된다. 건물은 원우(院宇)라고 했다. 원은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고려시대에는 원이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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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있는 개항기 효자 강덕순의 정려. 강덕순(康德淳)의 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문경(文京)이다. 문헌공 강원기(康元紀)의 후손으로 강권묵(康權黙)의 아들이다. 강덕순은 천성이 인후하고 부모 섬기기를 지극한 효로써 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들자 하늘에 대신 아프기를 축원하였고, 또 어머니 보살핌에 정성을 다하였다. 특히 평소에 부모 말씀에 순종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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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관료이자 서예가.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영찬(榮粲), 호는 오당(五堂)·초연재(超然齋)이다. 1886년 10월에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에서 태어났다. 은열공 강민첨(姜民瞻)[963~1021]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강희순(姜禧淳)이다. 강동희(姜東曦)는 개항기 군주사(郡主事)에 임명되었고, 1910년(순종 4) 조선총독부 군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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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규를 시조로 하고, 함흥달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강릉함씨(江陵咸氏)의 시조인 함규(咸規)는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삼국 통일에 공을 세워 익찬개국공신(翊贊開國功臣)으로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태위(太尉)에 책록되었으며, 벼슬이 광평시랑평장사(廣評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함씨가 강릉을 본관으로 삼은 것은 함규의 후손 함제(咸濟)가 강릉에 세거하게 된 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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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문신. 호는 송학(松鶴). 어릴 때부터 학문이 뛰어나 20세에 초시에 합격하고 29세 때에 대과에 합격하였다. 이후 동관국승을 지내다가 외직을 거쳐 내직인 나시랑·예시랑에 영전되었다. 이후 영암군수에 임명되어 임기를 마치고 내직으로 돌아와 태상예빈 등을 거쳐 승정원우승지에 올랐다. 그 후 신병으로 현직에서 물러났다가 장흥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얼마 후 집에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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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석인(姜錫麟)은 1919년 3월 2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가실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산구고등학교(山口高等學校)에 재학 중이던 1939년 2월 교우(校友) 유재우(柳在佑), 성창환(成昌煥) 등과 학교 친목 단체인 여우회(麗友會)를 민족주의 항일 단체로 개편하였다. 이후 신입생을 상대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한편, 창씨개명에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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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완휴재(玩休齋) 강승(姜昇)[1430~1500]의 후손이다. 강수립(姜守立)은 임진왜란 당시 김제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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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신천강씨 김제 입향조. 본관은 신천(信川). 호는 봉호(鳳湖). 증조할아버지는 고려 후기 삼중대광도첨의우정승(三重大匡都僉議右政丞)을 지낸 강숙(康叔)이고, 할아버지는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를 지낸 상산백(象山伯) 강서(康庶)이다. 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강윤(康允)이다. 강원기(康元紀)는 1348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신천강씨대동보(信川康氏大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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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강이문의 정려. 강이문(姜以文)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은열공(殷烈公) 강민첨(姜民瞻)의 후손이다. 3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자 매일 한스러움이 떠나지 않았고, 기일에는 통곡하며 음식을 전혀 먹지 않았다. 모친이 억지로 음식을 먹여 그를 기른 후 매일 새벽에 닭이 울면 묘를 살핀 지 40년이 되었다. 어머니가 병이 나자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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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강인준의 정려. 강인준(姜仁俊)은 본관이 진주(晉州), 자는 중예(仲乂)이고, 은열공 강민첨(姜民瞻)의 후손이다. 한성판윤 강우문(姜遇文)의 증손으로 무과에 합격하였으며, 성품이 순박하고 모든 일을 매우 조심스럽게 하였다. 강인준은 어버이를 섬기되 오로지 효도로 봉양하였고, 병으로 몸져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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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의병이자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비승(丕承). 완휴재(玩休齋) 강승(姜昇)[1430~1500]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강중호(姜仲虎)이다. 강종립(姜宗立)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으로 공을 세워 정릉참봉에 제수되었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따르면 지중추에 올랐다고 되어 있는데, 증직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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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인부(仁父), 호는 송재(松齋). 고조할아버지는 완휴재(玩休齋) 강승(姜昇)[1430~1500]이며, 아들로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동한 강종립이 있다. 강중호(姜仲虎)는 임진왜란 당시 김제 지역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과 싸운 공이 있다. 호조참판이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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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복죽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 뒷산이 풍수지리상 왕개미를 닮은 형국으로, 그 머리 부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개머리’ 또는 ‘개미머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한자로 전환하면서 의두리(蟻頭里) 또는 의두마을이라 하였다. 한편 개머리의 북서쪽에 신평천(新坪川)이 흐르고 있는데, 지금은 하류인 성덕면 수교에 수문을 설치하여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지만 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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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복죽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 뒷산이 풍수지리상 왕개미를 닮은 형국으로, 그 머리 부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개머리’ 또는 ‘개미머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한자로 전환하면서 의두리(蟻頭里) 또는 의두마을이라 하였다. 한편 개머리의 북서쪽에 신평천(新坪川)이 흐르고 있는데, 지금은 하류인 성덕면 수교에 수문을 설치하여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지만 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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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개신교가 들어오게 된 것은 전주와 군산의 선교부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에 의해서였다. 김제 지역을 편의상 서남 지역과 동북 지역으로 나눈다면 서남 지역은 군산선교부에서 선교를 담당했으며, 동북 지역은 전주에서 가까운 지역이었기에 전주선교부에서 선교를 담당하였다. 김제 서남 지역으로의 개신교가 전래는 김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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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복죽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 뒷산이 풍수지리상 왕개미를 닮은 형국으로, 그 머리 부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개머리’ 또는 ‘개미머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한자로 전환하면서 의두리(蟻頭里) 또는 의두마을이라 하였다. 한편 개머리의 북서쪽에 신평천(新坪川)이 흐르고 있는데, 지금은 하류인 성덕면 수교에 수문을 설치하여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지만 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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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도 나이를 먹는다. 어떤 작물을 심어도 잘 되고 잘 자라는 젊은 땅이 있는가 하면 잘 자라지 않는 늙은 땅이 있다. 작물도 지력(地力)을 고갈시키는 작물이 있고, 지력 회복을 돕는 작물이 있다. 지력이 고갈된 땅은 휴경하거나 지력 회복을 돕는 작물을 심고, 퇴비나 비료를 넣어 지력을 상승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으로도 지력 회복이 어려우면 다른 곳의 흙을 가져와 땅의 성질을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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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월촌동과 부량면 용성리의 경계를 이루는 원평천에 놓인 다리. 국도 29호선과 원평천이 만나는 곳에 세워진 갯다리는 길이 40m, 폭 11m, 유효 폭 10m, 높이 4m의 시멘트 콘크리트 다리이다. 2009년 현재 교통량은 7,758회이다. 조선 초기 세종 때부터 벽골제가 제방의 구실을 못하게 되자 둑이 무너지고 원평천을 타고 서해의 조수가 밀려들어오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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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임영춘이 전라북도 김제 광활면을 배경으로 쓴 장편소설. 임영춘의 『갯들』에는 일제의 수탈정책이 잘 드러나 있다. 일제는 갯벌을 메워 농민을 이주시키는 정책으로 우리나라 땅을 빼앗으려고 했지만, 이 사실을 잘 몰랐던 수많은 사람들이 간척지 사업에 몰려들게 되었다. 이 소설의 무대인 갯들에서 성장한 작가는 본인의 체험과 4년여에 걸친 자료 수집을 통해, 일제강점기 간척지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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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기 있는 간척 땅에서 자란 쌀은 화양마을이 자리한 광활면의 자랑거리이자 특색으로 손꼽힌다. 일제강점기에는 최상품으로 어느 지역 쌀보다 우대를 받으며 일본 천왕의 밥상에까지 올랐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이 쌀을 ‘다마금의 간척지 쌀, 조센미노’라고 불렀다. ‘다마금’이란 쌀 종자의 이름이다. 당시 소금기에 강하고 수확량이 좋아 일본인들은 광활 지역에서 전부 다마금 종자로 통일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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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마을의 농사나 길쌈을 위한 공동 노동 조직. 농청(農廳)[두레]의 변형과 소멸은 불균등한 토지 소유의 확대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경지는 개발 경영자의 이해에 의해 경영되고 있는 데 반하여, 농청의 공동 작업은 마을의 전체 경지를 하나의 공동 경영지로 간주하는 본질적인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논농사의 특수성과 농업 생산력의 미발달 등 현실적인 여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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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고려시대 초기는 실상 호족 시대의 후반기로 이때는 아직 왕권의 통치가 지방에까지 미치지 못하였다. 고려 왕조는 1018(현종 9)에 비로소 항구적인 지방 통치 제도를 마련하게 된다. 이전에도 여러 제도가 시도되었지만, 특히 이때에 와서 모든 고을의 이름이 다시 중국식 한자명으로 고쳐진 것이다. 그 기준은 757년(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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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부를 시조로 하고, 반희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거제반씨(巨濟潘氏)의 유래는 중국 주나라 문왕의 여섯째 아들인 계손이 반(潘) 땅에 봉해지고, 그곳을 식읍으로 하사받으면서부터이다. 반부(潘阜)는 원시조 반계손의 9세손으로, 고려 충렬왕으로부터 문하시중의 벼슬을 받고 기성(岐城)[거제의 옛 지명]의 부원군(府院君)에 봉해졌다. 입향조는 반부의 10세손 반희(潘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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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전통시대와 현대에 지어진 건축물. 건축이란 집이나 성, 다리 따위의 구조물을 그 목적에 따라 설계하여 흙·나무·돌·벽돌·쇠 따위를 써서 세우거나 쌓아 만드는 일이다. 김제시의 건축 유구(遺構)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작문화(稻作文化)의 특징에 걸맞게 삼국시대 축조된 수리 시설부터 그 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대표적인 유적이 벽골제이다. 이후 금산사가 창건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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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검산동·백학동·순동·상동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마을 뒷산이 마치 칼처럼 생겨 칼 ‘검(劍)’자와 뫼 ‘산(山)’자를 써서 검산동(劍山洞)이라 하였다. 1914년 이전에는 김제군 입천면 지역으로, 1914년 김제군 읍내면의 교동리·요촌리·서암리·옥산리, 입천면의 검산리·용동리·신풍리·백학리·순동리, 대촌면 갈공리와 신곡리의 일부를 통합하여 11개 리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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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검산동에 있는 체육공원. 검산생활체육공원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거주하는 생활체육인의 다양한 체육 활동 욕구를 해소시키고, 시민의 건강 증진과 삶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공설운동장은 1995년 개장하였고, 레포츠공원은 1997년 개장하였으며, 청소년수련관 내 실내수영장은 1998년 8월 개장하였다. 실내체육관은 1999년 조성되었다. 검산생활체육공원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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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검산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른 예절과 착한 언행으로 바르게 행동하는 도덕인,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의지가 강한 건강인, 의문을 갖고 깊이 생각하며 탐구하는 창조인, 폭넓은 교양을 바탕으로 진로를 개척하는 자주인,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알고 사랑하는 문화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자기 꿈을 재미있게 실천하는 김제검산’이다. 2000년 10월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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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검산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른 예절과 착한 언행으로 바르게 행동하는 도덕인,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의지가 강한 건강인, 의문을 갖고 깊이 생각하며 탐구하는 창조인, 폭넓은 교양을 바탕으로 진로를 개척하는 자주인,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알고 사랑하는 문화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자기 꿈을 재미있게 실천하는 김제검산’이다. 2000년 10월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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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볏짚으로 왼새끼를 꼬아 악귀를 쫓는 금기의 새끼줄. 금줄은 부정한 것의 접근을 막기 위해 대문 밖에 걸어두거나 길 어귀의 신목(神木)과 같은 신성한 대상물에 매는 줄이다. 이를 ‘인줄’ 혹은 ‘검줄’이라고도 한다. 즉 신성한 곳이나 정성껏 다루어야 하는 곳에 새끼를 꼬아서 둘러쳐 놓은 줄이다. 아기를 낳았을 때 숯과 청솔가지, 붉은 고추 등을 꿰어 대문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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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세운 후백제의 초대 왕. 본관은 전주(全州). 본성은 이(李)씨였으나, 뒤에 견씨(甄氏)라 하여 전주견씨의 시조가 되었다. 아버지는 아자개(阿慈介), 동생은 능애(能哀)·용개(龍蓋)·보개(寶蓋)·소개(小蓋), 누이는 대주도금(大主刀金), 부인은 상원부인(上院夫人)과 남원부인(南院夫人)으로 전해진다. 아들로 신검(神劍)·양검(良劍)·용검(龍劍)·금강(金剛)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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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순[1928년생] 할머니는 새벽 4시면 일어나서 교회로 향한다. 4시 반에 열리는 새벽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1985년부터 1997년까지 12년 동안 권사로 활동했던 할머니는, 지금도 명예권사로 신앙을 권유하는 일과 교회 안의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내촌마을에는 나정순 할머니 외에도 여러 할머니들이 교회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할머니들에게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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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우주(紆州)[오늘날의 전북 완주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우주(紆州). 자는 경덕(敬德), 호는 사가(四佳). 아버지는 고려에서 문하평리를 지낸 황문용(黃文用)이며, 어머니는 덕수장씨(德水張氏)로 현령을 지낸 장핵(張翮)의 딸이다. 황거중(黃居中)은 어릴 때부터 글 짓는 데 능하고, 경서를 해석함에 남달리 뛰어났다고 한다. 이성계(李成桂)의 황산전투(荒山戰鬪)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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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전문 시공 건설업체. 경신기업은 기술 혁신과 경영의 합리화를 달성하고 건축 문화를 고급화하여 건설 시공을 최적화함으로써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함은 물론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7년 6월 21일 경신기업으로 설립되었다. 초창기에는 새시·셔터·방충망을 중심으로 하는 영세 시공업체였으나 2000년부터는 강화유리, 각종 철구조물, 조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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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교육 선구자. 자는 경안(景安), 호는 유천(瑜泉)이다. 사재를 털어 김제중학교를 설립하는 데 앞장선 지방 교육의 선구자로 묘소는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월촌동 사직단에 자리하고 있다. 조재돈(趙在敦)은 1881년 김제군 읍내면[현재의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몸가짐이 단정하여 남의 귀감이 되었으며, 효성도 지극하여 동네 사람들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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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두릉(杜陵). 자는 경원(慶源), 호는 초당(草堂). 두만형은 1759년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 시사천리에서 태어나, 34세 되던 1792년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 구미마을에 정착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있어 향리 유생들의 추천으로 성균관에 들어갔다. 이후 해박한 지식과 문장이 정조에게 알려져 어전시재(御前試才)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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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서 경제계의 이익 대변과 상호간 유대 강화 또는 지역 경제에 대한 기여를 위해 조직된 단체. 경제단체란 일반적으로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고, 관련 기업들 간의 협력 및 정부 부처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경우가 많다. 이런 단체들은 기업 활동에 필요한 법률 제정과 규제에 대한 경영인들의 목소리를 응집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각 단체의 중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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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용역의 생산·분배·소비와 관련되는 활동 전반과 영역. 전형적인 농업 지역이었던 김제시가 1980년대를 기점으로 농공 복합 산업 단지를 조성하면서 농공 병행 산업 도시로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색해 왔다. 그리고 김제시에 조성된 전 산업 단지의 각 단지별 현황 및 입주 조건, 기 입주 기업 및 주요 생산물 현황, 김제시 지원 각종 유통 정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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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호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경주김씨(慶州金氏)는 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는데, 그 분파와 지파가 수십 개에 이른다. 대표적으로 신라 마지막 왕인 56대 경순왕(敬順王) 김부(金傅)의 셋째 아들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 및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을 1세로 하고 있는 영분공파와 대안군파가 있다. 김제의 경주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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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내광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 경주김씨의 정려. 열녀 경주김씨는 정수열의 처로서 시부모를 극진히 공양했으며, 병환이 위급함에 처하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마시게 했다. 또한 남편이 병환으로 임종하니 상례에 따라 장의 절차를 법도 있게 치렀다. 이에 고을 선비들이 효열부로 천거하여 1869년(고종 6) 12월에 명정되었다. 봉남면사무소에서 원평 쪽으로 1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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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화봉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부 경주이씨의 정려. 김제지(金濟智)의 처인 경주이씨는 천성이 어질어 늙으신 시부모를 극진히 공양하였고, 시부모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게 되자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여 여러 달 목숨을 잇게 하였다. 또 남편 김제지의 임종 때도 역시 단지(斷指) 수혈하여 피를 마시게 하니 여러 날 깨어나 있었다. 이와 같은 사실이 많은 사람들에 회자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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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중보(中甫), 호는 상촌(桑村). 아버지는 감찰지평(監察持平) 노준경(盧俊卿), 할아버지는 대호군(大護軍) 노단(盧亶), 어머니는 비순위별장(備巡衛別將) 이천로(李天老)의 딸이고, 아내는 김극치(金克致)의 딸 및 김후(金厚)의 딸이다. 아들은 노상인(盧尙仁)·노상의(盧尙義)·노상례(盧尙禮)·노상지(盧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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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휴(景休), 호는 저당(樗堂). 할아버지는 종실 오성수(烏城守) 이신손(李神孫)이고 아버지는 풍양령(豊陽令) 이춘(李春)이며, 부인은 남상덕(南尙德)의 딸이다. 아들은 이정신(李廷臣)이다. 이몽상(李夢祥)은 음사로 관직에 나아가 인의(引儀)와 감찰(監察) 등을 지냈다. 임실현감으로 재직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장사(壯士)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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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사진(士眞), 호는 계이당(繼怡堂). 아버지는 구산처사(龜山處士) 나응삼(羅應參)이고, 어머니는 양성기(梁成紀)의 딸이다. 나표(羅表)는 어려서부터 효행과 우애로 이름을 떨쳤다. 입신(立身)에 뜻을 두지 않고 초야에 묻혀 성현의 가르침을 본받으며 늙을 때까지 경전을 암송하고 가르쳤다. 1588년(선조 21) 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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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있는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고개는 산을 넘어가는 능선부로서 주요 교통로로 이용된다. 보통 고개라는 지명이 쓰이지만 이밖에 재·현(峴)·치(峙)·영(嶺) 등의 지명 접미사가 쓰이기도 한다. 고개는 그 지역 산지 중 가장 높은 곳을 통과하는 관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제 지역의 주요 고개로는 도장리고개, 불무재, 숙조고개, 여우고개, 토끼재, 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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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삼한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역사.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관해 비교적 확실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벽골제 축조에 관한 기사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330년(흘해왕 21) 년의 일이다. 그러나 이 시기 김제 지역은 백제의 영토였으므로, 벽골제 축조는 330년 백제 비류왕 27년에 축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한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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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고등 보통 교육 및 실업 전문 교육 기관. 김제시는 호남평야의 젖줄인 만경강과 동진강 유역에 광활한 평야를 형성하여 미곡생산량이 풍부해 ‘삼한 중 가장 풍요로운 땅’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부를 자랑하던 곳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양반 계층을 중심으로 한 문화와 예술이 발달하였고 서당, 서원, 향교 등 교육 기관이 김제 전역에 산재 하여 교육의 도시로도 유명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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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김제 지역 역사. 고려 전기는 실상 호족 시대의 후반기로, 왕조의 통치에 많은 한계가 있었다. 고려는 1018년(현종 9)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항구적인 지방통치 제도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 이전에도 여러 제도가 시도되기는 하였지만, 이때 와서 모든 고을의 이름이 중국식 한자명으로 다시 바뀌었다. 바뀐 기준은 757년에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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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함지나 물통 등의 네 귀퉁이에 줄을 매어 두 사람이 물을 푸는 농기구.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물을 푸기 때문에 맞두레라고 한다. 맞두레는 글자 그대로 목판처럼 바닥이 좁고 위가 넓은 나무그릇 네 귀퉁이에 줄을 달아, 두 사람이 두 줄씩 마주서서 잡고 호흡을 맞추면서 물을 떠올린다. 물이 깊이 고여서 두레나 용두레로는 물을 옮기기 어려운 데 쓴다. 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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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곡식·재 따위를 긁어모으거나 푸는 데 쓰는 농기구. 고무래는 직사각형·반달형·사다리꼴 등의 널조각 위쪽에 자루를 박아 ‘T’ 자 모양으로 만든다. 용도에 따라 논밭에서 쓰는 것과 염전에서 쓰는 것, 곡식을 멍석 등에 널어 말리는 데 쓰는 것, 부엌에서 재를 긁어내는 데 쓰는 잿고무래 등이 있다. 모양에 따라 고무래 날을 이빨처럼 어긋나게 톱으로 판 것과 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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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과 2008년 4월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인수공통전염병이 발생한 사건. 20세기에 들어 중국·러시아 등 후발 산업국가들의 개발이 맹렬히 진행되면서 시베리아와 유라시아 등지를 오가는 철새의 주요 서식지인 하천과 습지가 지속적으로 파괴되었고, 이에 따라 터전을 잃어버린 철새들이 인간의 경작지나 주거지까지 날아와 먹이를 구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이런 이유로 사람이 기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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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이자 성리학자. 고봉익(高鳳翼)은 광해군 재위 기간에는 과거를 포기하고 성리학에 몰두하였으며, 유집(柳楫), 조성립(趙成立)과 교유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과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군량을 모으고 의병을 모집하여 왕을 모셨다. 전라북도 김제시 하동 지음마을에 있는 지음서원(芝陰書院)에 배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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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분포하고 있는 선사시대부터 고대에 이르는 무덤. 고분은 과거 우리 조상이 묻힌 옛 무덤을 통칭하는 말이다. 고고학에서는 일정한 형식을 갖춘 한정된 시대의 무덤을 말한다. 여기에서 한정된 시대란 고대까지를 이른다. 물론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무덤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이 시기의 무덤 역시 옛 무덤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복원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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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분포하고 있는 선사시대부터 고대에 이르는 무덤. 고분은 과거 우리 조상이 묻힌 옛 무덤을 통칭하는 말이다. 고고학에서는 일정한 형식을 갖춘 한정된 시대의 무덤을 말한다. 여기에서 한정된 시대란 고대까지를 이른다. 물론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무덤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이 시기의 무덤 역시 옛 무덤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복원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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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집안의 안녕을 위해 가신(家神)에게 올리는 의례인 고사(告祀) 때 먹는 음식. 고사떡은 가을 추수와 가내 평안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낼 때 준비하는 떡이다. 특히 우리 조상들은 10월을 상달[上月]이라 하여 한 해 농사를 추수하고 햇곡식으로 제상을 차려 감사하였다. 말날[午日]이나 길일을 택해서 가내의 안녕을 관장하는 성주신에게 햇곡식으로 떡을 마련하고 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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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봉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3㎞ 떨어진 왕봉산(王峰山) 국사봉 밑에 오래된 절이 있었기 때문에 고사(古寺)라 부르다가 그 후 절 ‘사(寺)’자를 모래 ‘사(沙)’자로 바꾸어 고사(古沙)가 되었다. 조선 말기 만경군 하이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석소리·석치리·인향리·종야리 일부, 하일도면 남상리 일부, 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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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 고분이란 성토를 한 옛 무덤을 통칭하는 것이지만, 고고학 상으로 볼 때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 고대 사회의 분묘 양식을 말한다. 고분의 축조 방식은 불교의 전래 이전과 이후가 많은 차이를 보인다. 불교 전래 이전에는 분묘를 축조하면서 피장자의 곁에 껴묻거리[副葬品]를 많이 묻는 반면, 전래 이후에는 불교의 화장법이 성행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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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에 있는 고려시대 숫돌 제작소 터. 전통시대 백성들이 국가에 세금을 내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 즉 토지를 경작하면 내는 전세(田稅)와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역역(力役), 그리고 지역의 특산물을 바쳐야 하는 공납(貢納)으로 이루어졌다. 공려(貢礪)란 바로 국가에서 지역에 부과하였던 숫돌을 공납하는 것이며, 고사리 전 공려 터는 고려시대에 공납품이었던 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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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에 있는 고려시대 숫돌 제작소 터. 전통시대 백성들이 국가에 세금을 내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 즉 토지를 경작하면 내는 전세(田稅)와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역역(力役), 그리고 지역의 특산물을 바쳐야 하는 공납(貢納)으로 이루어졌다. 공려(貢礪)란 바로 국가에서 지역에 부과하였던 숫돌을 공납하는 것이며, 고사리 전 공려 터는 고려시대에 공납품이었던 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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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월전리에 있는 산. 고산(高山)[66m]은 초당골[막은댐]을 지나 전라남도 광양의 백운산까지 뻗어가는 호남정맥과 갈라져 북쪽으로 달리는 모악기맥의 한 줄기다. 모악기맥은 만경강과 동진강을 가르며 엄재, 국사봉, 화율봉, 장근재, 모악산, 유각치, 묘고산에 닿는다. 묘고산에서 서쪽으로 구성산 줄기를 나누고 곧바로 헬리포트에서 두 갈래를 친다. 서쪽은 구성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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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에서 죽산면까지 연결되는 고속국도. 전라남도 무안군을 기점으로 전라북도 김제시를 경유하여 서울특별시 금천구까지 이어진 고속도로이다. 서해안고속국도는 총 길이 340.6㎞로, 416㎞의 경부고속도로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긴 고속도로이다. 서해안고속국도가 김제시를 통과하는 구간은 청하면에서 죽산면까지로 김제시 인터체인지에서 국도 29호선과 만난다. 호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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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에서 백구면까지 연결되는 고속국도. 전라남도 순천시를 기점으로 김제시를 통과하여 충청남도 논산시를 잇는 고속도로이다. 호남고속국도는 김제시의 금산사 인터체인지에서 지방도 제712호선과 만나고, 김제 인터체인지에서는 국도 1호선과 지방도 714호선과 만나는 등 김제시의 원활한 교통운송체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호남고속국도는 원래 대전광역시에서 전라남도 순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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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에서 산이나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 먼저 조금 떼어 던지면서 외치는 소리. ‘고시레’라는 말은 감탄사다. 지방마다 유래가 좀 다르지만 거의 들이나 산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준비해간 음식 중에서 하얀 밥 같은 것을 던지면서 외치는 소리다. 고시레를 외치면서 음식을 던지는 행위는 우리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풍속 중의 하나다. 이런 행위는 대개 봄철에 모내기를 할 때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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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효자. 정존후(鄭存厚)[1778~1843]는 1803년(순조 3) 아버지가 병석에 누웠는데, 소의 생간을 먹어야 효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 소를 도살하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관에 청하였다. 당시 개인의 집에서 소를 잡는 것은 불법이었지만, 지극한 효성에 군수가 감탄하여 도살을 허락하였고, 소의 생간을 먹은 아버지는 병이 나았다.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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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탐진(耽津). 자는 자행(子行), 호는 고은(皐隱). 찬성 안사종(安士宗)의 아들이고, 형은 안기(安起)이고, 동생은 안일(安逸)이다. 안지(安止)[1377~1464]는 조선시대인 1414년(태종 14)에 문과에 2등으로 합격하여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에 임명되었다가 중시(重試)에 합격하여 집현전부제학(集賢殿副提學)을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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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 용암천에 있는 다리. 고은교(皐隱橋)는 고은 안지(安址)와 관련이 있는 다리이다. 안지는 조선 초기에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자 이를 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전라북도 김제군 용지면 평교리 안촌(安村)에 은둔하였다고 한다. 이에 세조가 고은에게 용지면에 땅을 하사하고, 그의 제자를 김제군수에 명하여 그를 보살피도록 하였다. 어느 날 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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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분포되어 있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고인돌은 선사시대 유적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유럽과 동남아시아, 중국의 화남 지방, 해안지대, 요동 지방,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 등에 분포하는 범세계적인 묘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함경북도 산간지대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에서 조사되고 있다. 특히 호남 지방에 거의 90% 이상이 집중되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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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고인옥(高仁玉)은 1879년 3월 10일에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구월리 23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1일 당시 김제군 수류면의 원평장날을 이용하여 배세동(裵世彤), 전도명(田道明), 전도근(田道根) 등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체포되었다. 그 후 같은 해 4월 11일 광주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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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옥정리에 있는 자연마을. 김제시 부량면 옥정리의 고잔(古棧)은 일명 ‘배수지’ 또는 ‘나루터’라고도 했는데, 배가 닿는 곳이라서 부두에서 바다로 나가게 만들어 놓은 다리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로 ‘고잔’이라 했다고 한다. 2009년 11월 현재 총 10가구에 19명[남자 8명, 여자 1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고잔은 앞군개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보통은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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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난봉동, 백학동, 황산면, 금구면 산동리에 걸쳐 있는 농경지. 봉산들 주변으로 두월천(斗月川)이 흐르고 있다. 봉산들은 두월천 주변의 하곡 충적평야로, 고잔들 또는 역전평야라고도 한다. 지방도 714호선은 동서 방향으로 봉산들을 지나며, 호남고속국도는 남북 방향으로 봉산들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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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백구리와 익산시 석탄동을 잇는 농업용수 공급용 수문에 설치된 다리. 고제교(古堤橋)는 길이 247m, 폭 4m의 1차선에 불과해 차량 통행은 금지되고 도보 이용만 허용되고 있다. 고제교는 1970년에 준공된 다리로 차량 통행을 목적으로 놓은 다리가 아니고, 농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설치한 농업기반 시설이었기 때문에 ‘만경강제수문(萬頃江堤水門)’이라는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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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에 있는 자연마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마을의 위치는 만경면 남쪽 13리이며, 백제시대에는 무근촌현(武斤村縣)으로 부르다가 신라시대에 무읍(武邑)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김제군 관할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부윤현(富潤縣)으로 바뀐 뒤 잠시 임피현에 속하였다. 그 후 만경현(萬頃縣)에 속하였다가 현이 폐지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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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 구암서원에 있는 열녀 고흥유씨의 정려. 고흥유씨(高興柳氏)는 천성이 온후하고 정숙하며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글을 좋아하고, 『소학(小學)』과 『열녀전(列女傳)』을 우리글로 번역하여 널리 읽히니 가까운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하였다. 고흥유씨가 우주황씨(紆州黃氏) 황하정과 결혼한 지 불과 3일 만에 남편이 원인도 모르게 세상을 떠났는데, 이에 부인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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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땅을 파는 데 쓰는 농기구. 1779년 나온 『한한청문감(韓漢淸文鑑)』에서는 ‘첨궐두(尖镢頭)’를 ‘곳광이’로 기록하고 있으며, 1839년 간행된 『사류박해(事類博解)』에서는 ‘첨광[尖镬]’을 ‘송곳광이’라고 하였다. 송곳광이는 날 끝이 송곳처럼 뾰족한 광이로, 오늘날의 황새곡괭이로 생각된다. 한편 1886년 간행된 『농정촬요(農政撮要)』에서는 곡괭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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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찹쌀·멥쌀·보리·밀가루 등을 쪄서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킨 농주. 막걸리는 예부터 각 지방의 관인 양조장에서만 생산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농가에서 개별적으로 제조하여 애용하기도 했다. 발효할 때 알코올과 함께 유산균이 생성된다. 빛깔이 뜨물처럼 희고 탁하며, 6~7도로 알코올 성분이 적은 술이다. 막걸리는 탁주(濁酒) 또는 탁배기라고도 하는데, 원래 고두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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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의 공적 이익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 「공공기관의 개인 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공공기관은 국가 행정 기관, 지방 자치 단체, 기타 공공 단체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관으로서 「초·중등교육법」 및 「고등교육법」이나 기타 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각 급 학교, 「정부투자기본관리법」 제2조의 규정에 의한 정부 투자 기관, 「특별법」에 의하여 설립된 특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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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동계리에 있던 사당. 중국에서는 관운장(關雲長)을 신으로 신봉하면 전시에 관운장의 신령이 나타나 적을 섬멸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관성묘는 중국 촉한의 무장이었던 관운장의 사당을 말하는데, 중국에서는 관왕묘라 부르고 있어 동일한 뜻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공자의 묘를 문묘(文廟)라 하는데 대해 무묘(武廟)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한양을 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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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저산리와 익산시 오산면 신지리를 잇는 다리. 공덕대교는 2002년 준공되었으며, 길이 800m, 폭 12.1m, 유효 폭 11.4m, 높이 9.9m이다. 최대 견장 사이 50m의 경간 수는 16, 상부는 STB형 구조, 하부는 TP형 구조이다. 2009년 현재 교통량은 연 37,018회이다. 공덕대교는 만경강 위에 건설된 다리로, 2002년 기존의 국도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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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있는 공덕저수지에서 이름을 따서 공덕리(孔德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만경군 동이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명마리·광동·송산리·존걸리·신흥리 일부, 동일도면 남당리·마현리 일부를 병합하여 공덕리라 하고 김제군 공덕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공덕면 공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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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공덕리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고분이란 성토를 한 옛 무덤을 통칭하는 것이지만, 고고학 상으로 볼 때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 고대 사회의 분묘 양식을 말한다. 고분의 축조 방식은 불교의 전래 이전과 이후가 많은 차이를 보인다. 불교 전래 이전에는 분묘를 축조하면서 피장자의 곁에 껴묻거리[副葬品]를 많이 묻는 반면, 전래 이후에는 불교의 화장법이 성행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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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행정구역.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만경군의 동일도면·동이도면·북이도면을 병합하고, 당시 동이도면 공덕리에 있는 공덕저수지[일명 공덕지]에서 이름을 따서 공덕면(孔德面)이라 하였다. 삼한시대에 마한에 속했던 지역으로, 백제시대에 내리아현(乃利阿縣),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이성현(利城縣), 조선시대에 만경현(萬頃縣)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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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마현리에 있는 수령 약 650년의 보호수.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하여 정자나무나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예부터 선비들은 은행나무 밑에 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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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동계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민주 시민 교육의 생활화로 더불어 살아가는 어린이[Character Power], 새롭게 생각하고 깊이 탐구하는 어린이[Creativity Power], 자주적인 태도로 문제를 해결하는 어린이[Independence Power],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의지가 강한 어린이[Wellbeing Power]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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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동계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민주 시민 교육의 생활화로 더불어 살아가는 어린이[Character Power], 새롭게 생각하고 깊이 탐구하는 어린이[Creativity Power], 자주적인 태도로 문제를 해결하는 어린이[Independence Power],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의지가 강한 어린이[Wellbeing Power]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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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보(公輔). 증조부는 종실 오성수(烏城守) 이신손(李神孫)이고 할아버지는 풍양령(豊陽令) 이춘(李春)이며, 아버지는 이몽상(李夢祥), 어머니는 남상덕(南尙德)의 딸이다. 아들은 이응명(李應蓂)·이응협(李應浹)·이응시(李應蓍)이다. 이정신(李廷臣)은 1579년(선조 12) 사마시에 합격하고, 1588년(선조 21) 식년문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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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공보(共寶), 호는 월재(月齋). 아버지는 이몽학(李夢鶴)의 난과 임진왜란에서 공을 세운 나신도(羅伸道)[1568~?]이다. 나형(羅珩)은 지금의 김제시 신풍동에서 태어났다.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급제하여 정략장군(定略將軍)으로 선전관청선전관을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전라병사 김준룡(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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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김제 출신의 의병. 공사일(孔士一)의 본관은 곡부(曲阜)이다. 1883년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관상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이에 격분하여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며 국권 회복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공사일은 이 시기에 전해산(全海山) 의병진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하였다. 전해산 의병장은 1908년 8월 선봉장 정원집(鄭元執)과 함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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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영중(瑩中), 호는 묵재(默齋), 초명은 종동(終同). 아버지는 선천군사(宣川郡事)를 지낸 김숙보(金叔甫)이고, 어머니는 서씨(徐氏), 처는 금이(今伊)이다. 1447년(세종 29) 사마시에 합격하고 1451년(문종 1) 증광문과에 정과로 급제, 승문원정자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아내가 장사꾼의 비단을 절취한 사건에 연루되어 황해도 경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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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의 산업 중 인력이나 기계력으로 원료를 가공하여 유용한 물자를 생산하는 산업.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태에 있는 현 김제 지역의 공업 발전을 위해 김제시는 새만금의 중심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을 바탕으로 동북아 및 전국 최고의 물류허브단지를 조성하는 중장기적인 지역 특성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2008년 현재 김제시에서는 7개 산업단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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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오락과 휴식을 위해 조성된 장소와 시설. 공원은 후생을 위해 지정·보호하거나 조성한 자연지(自然地) 또는 인공적으로 조경한 공공녹지를 말하며 전자를 자연공원, 후자를 도시공원이라고 한다. 자연공원은 국립공원과 도립공원으로 분류되며 국가 또는 지방 자치 단체가 자연 풍경지를 보호하고 국민이나 주민의 보건 휴양 및 정서 생활의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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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오봉리에 있는 효자 공협신의 정려. 공협신(孔協臣)의 자는 찬경(贊京)이고 호는 죽포(竹圃)이다. 아버지는 공규영이고, 어촌(漁村) 공부(孔府)의 후손이다. 공협신은 성품이 슬기롭고 품행이 단정하며 어버이를 섬기는 정성이 또한 지극하여, 이를 후세에 귀감으로 삼고자 1927년 공협신 정려가 세워졌다. 김제시 금구면 오봉리 534번지로, 양석마을에서 양석냉천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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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이루어지는 자연 과학·응용과학·공학 및 생산 기술의 총칭. 과학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으로 넓은 뜻으로는 학(學)을 의미하나 좁은 뜻으로는 자연 과학을 지칭한다. 그리고 기술은 과학의 이론을 실제로 적용하여 자연의 사물을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가공하는 수단을 의미한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은 상호 밀착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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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곽경렬(郭京烈)의 본관은 현풍(玄風)으로, 1901년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에서 태어났다. 곽봉수(郭奉守)로도 불렸다. 곽경렬은 1915년 15세의 어린 나이에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대한광복회는 박상진(朴尙鎭)·채기중(蔡基中) 등이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과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 인사들을 통합하여 대구에서 조직한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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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곽대형(郭戴炯)은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 출신으로, 1926년 중동학교에 재학 중 김재문(金載文)·황정환(黃廷煥) 등과 중동학교 대표로 6·10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6·10만세운동은 조선학생과학연구회를 중심으로 전문 학생층의 계획과 중앙고등학교와 중동학교 중심의 중등 학생층의 계획으로 추진되었다. 전문 학생층의 시위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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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곽경렬(郭京烈)의 본관은 현풍(玄風)으로, 1901년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에서 태어났다. 곽봉수(郭奉守)로도 불렸다. 곽경렬은 1915년 15세의 어린 나이에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대한광복회는 박상진(朴尙鎭)·채기중(蔡基中) 등이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과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 인사들을 통합하여 대구에서 조직한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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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효자 곽효각의 정려. 곽효각(郭孝恪)은 곽채규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아버지 곽채규가 오래도록 아들이 없다가 느지막하게 얻은 아들이다. 곽효각은 이름에도 ‘효(孝)’자가 들어갔듯이 하늘이 내린 효자로서, 지극 정성으로 부모에 대한 효를 실천궁행하여 만경현(萬頃縣)의 유림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되었다. 곽효각 정려는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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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에 있는 개항기 효자 곽효현의 정려. 곽효현(郭孝炫)은 아버지 곽채규로부터 이어 온 효자로서 부친에 대한 효행은 물론 이웃 및 집안 간에도 서로 우애하도록 이끌어 화목하게 지냈으며, 남다른 성품으로 남의 일을 내 일처럼 돌보아 주었다. 또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의롭게 살펴 부친의 뒤를 이은 기품으로 효와 의를 다하여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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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풍광·풍속·사적 등을 유람하는 일. 전라북도 김제시는 21세기 황해권 시대의 중심 도시로 호남 최대의 곡창 지대인 만경평야를 기반으로 국내 최대의 쌀 생산은 물론 다양한 농경산업을 이끌고 있으며, 대한민국 최우수 문화 관광 축제인 지평선축제를 통해 농촌 문화 등 다양한 체험과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내륙과 해안이 공존하는 특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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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중엽 전씨·송씨·오씨·조씨 등이 모여 살며 마을이 형성되었다. 참판·좌랑·정령·현감 등의 벼슬을 한 사람이 많이 살게 되자 관촌으로 부르다가, 관동(官東) 위에 있는 마을이므로 관상리(官上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김제군 마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관상리·석동리·거산리·송방리 일부, 북면 송중리·송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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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대한불교 원효종 소속 사찰. 대한불교 원효종은 비구와 대처의 분쟁에서 조계종을 이탈한 정수용, 손근도, 김수길, 이종구, 손월제 등의 일부 대처승들이 모여 정수용을 초대 종정으로, 경주 망월사를 총 본산으로 하여 출범하였다. 종정(宗正)으로 추대된 정수용은 경주 출신으로 조계종의 승려가 되어 기림사(祗林寺) 주지를 지내고 망월사(望月寺)에 있다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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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오봉리에 있는 대한불교 관음종 소속 사찰. 속칭 각시골이라 불리는 관응사(觀應寺) 절터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는데 “첩첩산중으로 한 각시가 들어가매 이를 기이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뒤를 따라가 보니 현재의 절터에서 사라져 이곳에 절을 짓게 되었다.”고 전한다. 또 이곳의 관음보살에게 치성을 드리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전하며 이 관응사 터를 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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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활동한 유가종(瑜伽宗) 승려. 본관은 경원(慶源). 아버지는 문하시중 이자연(李子淵)이고, 어머니는 경주김씨이다. 혜덕왕사(慧德王師)[1038~1096]는 1048년(문종 2)에 출가하여 지광국사(智光國師) 해린(海麟)의 제자가 되었고, 이듬해 복흥사(復興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061년(문종 15)에 승과에 합격하여 대덕(大德)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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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마을이 자리한 광활면의 주 생산 품목은 분명 쌀이다. 갯지렁이를 잡고, 조개를 캐고, 망둑어를 잡아 농가 수익에 도움이 되었지만 벼농사만큼 소득을 올리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현재 광활면은 쌀보다 하우스 감자로 더 유명하다. 주 생산 품목이 바뀐 것이다. 연간 소득도 쌀보다 감자가 높다고 한다. 광활면에서 봄에 생산하는 하우스 감자가 전국 생산량의 20%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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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에서 생산되는 감자. 감자는 가짓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현재 세계 130여 나라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생산량 기준으로 옥수수·벼·밀 다음을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전체 농산물 생산량 중 0.17%로 아주 적은 양을 생산하고 있다. 이 중 광활감자는 간척지 토양에서 재배되어 알이 실하며, 저장성 또한 뛰어나 전국의 봄감자 생산량의 20%의 비중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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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에 있는 농경지. 광활들은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광활면 일대 갯벌의 대규모 간척 공사에 전국의 수많은 인부들이 동원되었다. 그들의 노력으로 해안 지형은 ‘개땅’으로 바뀌었고, 수평선은 지평선으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간척민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개척한 그 개땅에 소작인으로 눌러앉아 살면서 일본인들의 착취 대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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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과 성덕면에서 생산되는 딸기. 딸기는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잎자루는 길고 비교적 큰 3개의 잎이 달리며 각각은 둥글고 가장자리가 톱니 모양이다. 식용 딸기는 씨방이 발달하여 과실이 되는 다른 과실과 달리 꽃받침 발달한 것으로 씨가 열매 속에 없고 과실 표면에 깨와 같은 모양으로 붙어 있다. 광활딸기는 1960년대부터 김제시 광활면 일대에서 비닐하우스 재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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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행정구역. 전라관찰사를 지낸 이서구(李書九)가 광활간척지를 가리켜 ‘구구지간 광활만인지지(九區之間廣闊萬人之地)’라고 했듯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고 넓다는 뜻에서 광활(廣活)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김제군 진봉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49년 8월 15일 진봉면의 광활한 간척지를 갈라서 광활면을 신설하고 옥포리(玉浦里)·은파리(銀波里)·창제리(蒼提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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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동진농업주식회사가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지역에서 3년간 축조하여 농토를 조성한 간척 사업.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은 김제시 중심지에서 약 15㎞ 거리에 위치한 거북이 형상을 한 지역이다. 동쪽의 김제시 성덕면, 북쪽의 김제시 진봉면과 경계를 이루면서 남서쪽으로는 동진강으로 비롯되는 서해와 인접한 간척지로서 경사가 거의 없는 평야지대이다. 또한 지방도 702호선이 만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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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은파리·옥포리·창제리에 있는 방조제. 광활방조제는 1924년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일대 동진강으로 밀려드는 조수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동진농업주식회사가 건립하였다. 1924년 준공되어 다른 곳과 함께 국가관리결정을 받았는데, 1952년 9월 폭풍우로 제방 일부가 유실되어 구제방으로 결정되었다. 이후 1966년 6월 주민 부담으로 복구되어 같은 부분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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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옥포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체험 중심의 인성 교육으로 공동체 발전에 공헌하는 도덕인, 폭넓은 교양을 바탕으로 진로를 개척하는 자주인, 기초 능력을 토대로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창조인, 전민적인 성장의 기반 위에 개성과 건강을 추구하는 건강인,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의 토대 위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심미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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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옥포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체험 중심의 인성 교육으로 공동체 발전에 공헌하는 도덕인, 폭넓은 교양을 바탕으로 진로를 개척하는 자주인, 기초 능력을 토대로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창조인, 전민적인 성장의 기반 위에 개성과 건강을 추구하는 건강인,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의 토대 위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심미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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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옥포리에서 매년 김제시와 광활감자작목반 주관으로 개최되는 축제.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 지역은 간척지로서 모래 토질에 풍부한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다. 김제시 광활 지역에서 생산되는 봄감자는 육질이 단단하고 당도가 높아 ‘밤감자’로 불리며 타 지역의 감자보다 최고 2배 이상 비싼 가격에 출하되고 있다. 김제시 광활면의 2009년 현재 재배 면적은 310㏊로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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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논밭이나 땅을 파는 데 쓰는 기구. 석기시대의 돌도끼가 철기시대에 들어 분화, 발전하면서 도끼와 괭이로 변천된 것으로 보인다. 농경 시대에 접어들면서 활용도가 높아진 농기구로 정착됐다는 설이 있다. 일반적인 모양은 날을 이루는 넓적한 쇠끝이 ‘ㄱ’ 자로 구부러져 괴구멍을 이루고 여기에 나무 자루를 끼웠다. 날의 모양은 토질과 용도에 따라 길이와 너비, 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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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의 성산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터. 성산(城山)은 높이 42m의 남북으로 긴 독립된 산인데, 산 정상에 지형을 따라 타원형으로 토성이 세워져 있다. 성곽의 총 둘레는 559m로, 원래는 토루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유실 또는 파괴된 곳도 있다. 성산성은 김제의 주성으로 백제 때 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산성의 성곽은 원래 토성과 석성의 이중성으로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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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의 성산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터. 성산(城山)은 높이 42m의 남북으로 긴 독립된 산인데, 산 정상에 지형을 따라 타원형으로 토성이 세워져 있다. 성곽의 총 둘레는 559m로, 원래는 토루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유실 또는 파괴된 곳도 있다. 성산성은 김제의 주성으로 백제 때 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산성의 성곽은 원래 토성과 석성의 이중성으로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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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제월동·명석동·입석동·장화동·복죽동·옥산동·신월동·월봉동·연정동·갈공동·신덕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교동(校洞)은 향교가 위치한 데서 유래하였고, 월촌동(月村洞)은 1914년 월산면과 대촌면이 통합될 때 ‘월’자와 ‘촌’자를 따서 월촌면이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교동은 1914년 이전에는 김제군 읍내면 지역으로, 1914년 읍내면·입천면·대촌면 일부와 함께 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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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지형지물의 위로 건널 수 있도록 만든 인공 구조물. 김제시에는 2009년 1월 현재 총 117개의 교량이 있으며, 이들 교량의 총 길이는 5,016.9m이다. 도로별로는 국도에 설치되어 있는 교량이 6개·453.8m, 지방도에 설치된 교량이 7개·1,350m, 시도에 설치된 교량이 8개·203.5m, 군도에 설치된 교량이 35개·944.5m, 농어촌도에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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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전라북도 김제교육지원청에서는 ‘꿈과 사랑이 가득한 행복한 학교’라는 교육 비전과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적인 인간 육성’이라는 교육 지표 아래 꿈을 키우며 즐겁게 공부하는 학생, 사명감을 가지고 신명나게 가르치는 교원, 찾아서 도와주고 다함께 참여하는 지원 행정을 구현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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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매년 7월 김제교육지원청 주관으로 개최되는 초등학교 씨름대회. 김제교육장기 초등학교 씨름대회는 체육의 활성화와 더불어 잠재력 있는 꿈나무 선수를 조기에 발굴하여 우수한 씨름 선수를 배출하기 위한 대회로, 2005년 7월 13일 제1회 김제교육장기 초등학교 씨름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7월 개최되고 있다. 교육장기 초등학교 씨름대회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열렸으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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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주요 도로, 교통수단 및 관련 시설. 전라북도 서부 평야권의 중심지에 위치한 김제시는 주변에 전주시, 군산시, 익산시, 정읍시 등 네 개의 시와 완주군, 부안군 등 두 개의 군이 인접해 있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김제시를 중심으로 여섯 개 노선의 도로가 방사상으로 뻗어 있어 주변 지역과의 연결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동쪽의 전주시·완주군과는 김제~금구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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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기독교를 신앙하며 종교 활동을 하는 공동체. 호남에서도 손꼽히는 곡창 지대로 알려진 김제 지역은 그 지리적 특성상 다양한 교통로를 가지고 있었다. 기독교가 육로와 수로 등 다양한 통로를 거쳐 전파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제 서부 지역은 군산 선교부의 전킨[한국명 전위렴] 선교사가 만경강을 건너와 1886년 송지동교회를 세우는 등 활발하게 선교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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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물건을 담아 메고 다니기 위해 새끼나 노 등으로 꼬아 만든 주머니. 지역에 따라 망탁, 망태, 구럭, 깔망태라고도 한다. 쓰임새에 따라 크기나 모양이 다양한데, 한쪽 또는 양쪽 어깨에 멜 수 있다. 꼴을 담는 것을 ‘꼴망태’라고 한다. 고려시대부터 인삼[산삼]이나 산나물을 캐러 가는 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망태는 끈이 달린 주머니로 감자나 옥수수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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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자연마을. 옛날 이곳에 도예지가 있어 그릇골이라 하다가 구릿골이 되었고, 이를 한자로 옮기면서 구리 ‘동(銅)’자와 골짜기 ‘곡(谷)’자를 써서 동곡(銅谷)이라고도 하였다. 도기촌이라고도 한다. 구릿골은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하운동마을의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증산교도들이 성지로 받드는 동곡약방(銅谷藥房)[구릿골약방]이 있어 널리 알려진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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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 앞에 거북의 머리 같은 바위가 있고 마을 뒷산 모습이 거북등을 닮았으며, 마을은 거북의 꼬리 부분에 알을 낳은 형국이라 하여 ‘구미란(龜尾卵)’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구미란은 1894년 12월 동학농민운동 당시 일본군과 관군을 대적한 동학군이 이곳에서 싸우면서 마을이 모두 불타 버리고 수백 명의 동학군이 죽었다는 전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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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말과 기억에 의존하여 전해 내려오는 민간 지식의 총칭. 구비전승은 크게 문학적 성격을 지닌 구비문학과 비문학적 성격의 말로 된 생활 기술 지식을 총칭하는 말로 쓰인다. 구비전승 하면 떠오르는 구비문학의 경우 전설·신화·민담 등 문학적 요소를 담고 있는 설화와 노동요·만가·타령 등 노래의 형식을 빌린 민요[口傳歌謠], 그밖에 수수께끼·속담 등으로 나뉜다.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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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중장(仲章), 호는 이이당(怡怡堂)·구산처사(龜山處士). 아버지는 건계(建溪) 나안세(羅安世)이고, 형은 행정(杏亭) 나응허(羅應虛)이다. 나응삼(羅應參)은 아버지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그 변을 직접 맛보며 병세를 살폈고,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여묘살이를 하였다. 또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한결같이 예법에 따랐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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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와 금산면 용산리, 청도리에 걸쳐 있는 산. 구성산(九城山)은 한자로 아홉 구(九), 성 성(城)을 써서, 아홉 개 산봉우리에 성을 쌓아 적의 침입을 막았던 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역 주민에 의하면 굴성산으로 불렀다고도 한다. 정상의 서편 100m 지점의 헬기장이 있는 상봉과 구성산 줄기와 봉두산(鳳頭山) 주위에 성을 쌓고 적군의 침입을 막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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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산(九城山)은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와 금산면 용산리와 청도리의 경계에 있다. 아홉 구(九)자와 성 성(城)자를 써서, 아홉 개 산봉우리에 성을 쌓아 적의 침입을 막았던 산이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정상 서쪽에 위치한 상봉과 봉두산 주위에 성을 쌓고 왜구의 침입을 막았다고 전한다. 지금도 주위에는 성터의 흔적이 남아 있고, 동쪽 아래에 있는 귀신사가 임진왜란 당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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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터. 구성서원(九城書院)은 1700년(숙종 26) 윤순거(尹舜擧)[1596~1668]와 윤증(尹拯)[1629~1714]을 모신 서원으로, 1868년(고종 5)에 헐어버렸는데 다시 세우지 못해 묘처럼 봉분한 단과 비(碑)만 남아 있었다. 단은 하나이고 비는 ‘동토윤선생(童土尹先生)’과 ‘문성공명재윤선생(文成公明齋尹先生)’이라 새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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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터. 구성서원(九城書院)은 1700년(숙종 26) 윤순거(尹舜擧)[1596~1668]와 윤증(尹拯)[1629~1714]을 모신 서원으로, 1868년(고종 5)에 헐어버렸는데 다시 세우지 못해 묘처럼 봉분한 단과 비(碑)만 남아 있었다. 단은 하나이고 비는 ‘동토윤선생(童土尹先生)’과 ‘문성공명재윤선생(文成公明齋尹先生)’이라 새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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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농가에서 말이나 소의 먹이를 담는 나무로 만든 그릇. 말구유는 구수[전라북도], 구시[경상남도], 궁이[강원도] 등으로 불린다. 통나무를 파서 구유를 만들었을지라도 이를 바로 쓰면 터지기 때문에 2~3년 동안 그늘에 두어 오줌 따위를 받아 두었다가 사용한다. 이러한 예비 구유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사랑채 부근에 두고 오줌을 받는데, 이를 오줌 구유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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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서암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구수산(九水山)[46m]의 모습이 마치 소나 말의 여물을 담는 구수통[구유통의 사투리]과 같다 하여 구수멀이라고 했다는 설과 마을 뒷산의 구수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구수산 밑의 샘구멍이 아홉 개여서 구수멀이라고 했다는 설과 구수산 아래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구수산은 신곡동·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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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서암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구수산(九水山)[46m]의 모습이 마치 소나 말의 여물을 담는 구수통[구유통의 사투리]과 같다 하여 구수멀이라고 했다는 설과 마을 뒷산의 구수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구수산 밑의 샘구멍이 아홉 개여서 구수멀이라고 했다는 설과 구수산 아래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구수산은 신곡동·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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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서암동에 있는 산. 구수산(九水山)은 소나 말의 먹이를 담는 구수통[구유의 사투리] 형상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뒷산은 구수산, 앞산 밑에는 생수가 솟는 물구멍이 아홉 군데가 있어 구수멀로 불렸다는 설도 있다. 예부터 구수산에는 생수가 많이 솟아서 농사짓는 데 걱정이 없었고, 지금은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는 배수지가 있어 선조들이 지은 지명이 증명된 셈이다. 구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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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농가에서 말이나 소의 먹이를 담는 나무로 만든 그릇. 말구유는 구수[전라북도], 구시[경상남도], 궁이[강원도] 등으로 불린다. 통나무를 파서 구유를 만들었을지라도 이를 바로 쓰면 터지기 때문에 2~3년 동안 그늘에 두어 오줌 따위를 받아 두었다가 사용한다. 이러한 예비 구유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사랑채 부근에 두고 오줌을 받는데, 이를 오줌 구유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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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 귀신사(歸信寺)는 676년(문무왕 16)에 의상대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백제 법왕 때 왕실의 내원사로 처음 세워졌다는 주장도 있다. 창건 당시의 명칭은 국신사(國信寺)였다고 한다. 그 후 통일신라 말기 도윤(道允)이 중창한 뒤 귀신사로 개칭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원명국사[1090~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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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에 있는 자연마을. 구암마을 서쪽에 위치한 둔산마을 동쪽 들 가운데에 큰 바위가 있는데, 마을 어귀에 있는 팽나무 밑에서 바라보면 영락없이 거북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마을 이름을 거북 ‘구(龜)’자를 써서 구암(龜岩)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거북 구(龜)자 대신 아홉 ‘구(九)’자를 써서 구암(九岩)으로 바뀌었다.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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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거북바위가 있어 거북 또는 구암(龜岩)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김제군 개토면에 속했던 지역이다. 인근에서 가장 높은 사창산(社倉山)[57m] 북쪽 아래에 있는 마을로 개토면 시절에는 거복리(巨伏里)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명당리·신평리·중평리·구평리 일부를 병합하여 구암리(龜岩里)라 하고 김제군 용지면에 편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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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 사창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사창 터. 사창(社倉)은 조선시대 지방의 각 촌락에 설치된 일종의 곡물 대여 기관이다. 의창(義倉)과 같은 성격의 기관이나 의창은 국영이요, 사창은 사(社)[행정단위로 지금의 면]에서 경영하는 것이었다. 사창의 기능으로는 고곡(古穀)을 대출하고 무이자로 신곡을 받는 것, 곡물을 대여하여 이자만 받는 것, 춘궁기에 대출하여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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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 사창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사창 터. 사창(社倉)은 조선시대 지방의 각 촌락에 설치된 일종의 곡물 대여 기관이다. 의창(義倉)과 같은 성격의 기관이나 의창은 국영이요, 사창은 사(社)[행정단위로 지금의 면]에서 경영하는 것이었다. 사창의 기능으로는 고곡(古穀)을 대출하고 무이자로 신곡을 받는 것, 곡물을 대여하여 이자만 받는 것, 춘궁기에 대출하여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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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구암서원(龜巖書院)에서 주벽으로 모시는 사가(四佳) 황거중(黃居中)의 신도비문에 의하면, 황거중은 우주황씨로 자는 경덕(敬德)이다. 고려 말기 관직에 있으면서 경학을 통해 도를 이루는 데 힘썼다. 조선 왕조 창업에 동참하여 태조가 왕위에 오르자, 개국 공신으로 정당문학(政堂文學)이 되었다. 이때 황거중은 유학을 진작시키고자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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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구암의 ‘구’자와 월곡의 ‘월’자를 따서 구월리(九月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금구군 수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곡리·구암리 일부, 태인군 감산면 사리 일부를 병합하여 구월리라 하고 김제군 수류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수류면이 금산면으로 개칭됨에 따라 김제군 금산면이 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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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구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옹기가마터.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옹기가마는 약 10여 년쯤 전에 사라졌다고 한다. 옹기가마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을 중심으로 그 일대에서 가마터가 발견되었으며, 주변에서 상당한 양의 옹기편들이 수습되었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자세하게는 알 수 없으나 옹기편의 조성 수법으로 보아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 만들어진 옹기가마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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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구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옹기가마터.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옹기가마는 약 10여 년쯤 전에 사라졌다고 한다. 옹기가마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을 중심으로 그 일대에서 가마터가 발견되었으며, 주변에서 상당한 양의 옹기편들이 수습되었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자세하게는 알 수 없으나 옹기편의 조성 수법으로 보아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 만들어진 옹기가마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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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직제학을 지낸 구종길(具宗吉)의 후예로서 아버지는 진사를 지낸 구원이다. 구정려(具廷呂)는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날 당시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으로 있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구정려는 경기전참봉으로 있던 오희길(吳希吉)을 비롯하여 유인(柳認), 손홍록(孫弘祿), 안의(安義) 등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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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구성의 ‘구’자와 유정[유덕]의 ‘정’자를 따서 구정리(九井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금구군 초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성리·유덕리 일부, 수류면 구암리 일부를 병합하여 구정리라 하고 김제군 초처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초처면이 봉남면으로 개칭됨에 따라 김제군 봉남면 구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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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백제 초기에는 지방 통치가 지역 부족 수장들의 자치적 기능에 맡겨져 왔다. 고이왕 이후에 5부 체제가 갖추어지면서 그들이 점차 중앙 귀족화되면서 부에 편입되었고, 지방 통치가 이들을 통한 간접적인 지배 형태가 되어 구지지산현(仇知只山縣)으로 개칭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삼국시대에는 구지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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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에서 금구면 대화리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1호선은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김제시를 통과하여 판문점을 거쳐 평안북도 신의주시까지 이르는 일반국도이다. 목포시에서 판문점까지의 길이는 498.7㎞이고, 목포시에서 신의주시까지는 939㎞이다. 전라북도 구간은 정읍시 감곡면 통석리에서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로 진입하여 금구면 대화리까지 호남고속국도와 평행하게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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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에서 금구면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21호선은 전라북도 남원시 죽항동에서 김제시를 경유하여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까지 연결되는 총 길이 337.7㎞의 일반국도이다.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에서 금구면 구간까지는 국도 1호선과 같은 도로를 사용하여 전주시로 연결된다. 이후 전주시 강흥동에서 만경강을 건너 김제시 백구면 석담리로 진입하여 공덕면 저산리까지 연결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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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에서 백산면을 지나 공덕면까지 연결되는 국도.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에서 김제시를 경유하여 충청남도 천안시까지 이르는 총 길이 394.1㎞의 일반국도이다. 전라북도 구간은 부안군 장동리에서 진입하여 김제시 죽산면, 백산면, 공덕면을 지나 만경강을 건너 군산시 오산면과 연결되는 22.12㎞이다. 왕복 2차선은 1.10㎞, 왕복 4차선은 22.12㎞이고,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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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을 지나는 국도.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에서 김제시를 경유하여 전주시, 거창군을 지나 대구광역시 서구를 연결하는 총 길이 174.6㎞의 일반국도이다. 전라북도에서 국도26호선은 군산시 옥구읍 옥서면에서부터 출발하여 군산시, 군산시 개정면·대야면, 익산시 오산면, 익산시, 김제시 백구면·용지면, 전주시, 완주군 용진면·소양면, 진안군 부귀면·마령면·진안읍,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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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백산면·성덕면·만경읍·청하면을 지나는 일반국도.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김제시를 경유하여 충청남도 서산시를 연결하는 총 길이 311.1㎞의 일반국도이다. 전라북도 구간은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에서 진입하여 순창군 복흥면, 정읍시 고부면과 영원면, 부안군 백산면, 김제시 부량면, 김제시 백산면·성덕면·만경읍·청하면, 군산시 대야면·개정면·성산면을 지나며, 금강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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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입석동에 있는 농산물 품질 관리 기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전북지원 김제출장소는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안전하고 품질 좋은 농산물이 생산·공급될 수 있도록 농산물에 대한 검사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농산물 품질 향상과 농산물 유통 질서 확립에 필요한 체계적인 검사를 관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49년 「농산물검사법」 제정에 의거 농림부 산하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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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국명(國明), 호는 운정(篔亭)이다. 고려 충숙왕조에 평장사를 지낸 문성공(文成公) 완산군(完山君) 최아(崔阿)가 비조(鼻祖)이다. 고려조에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특진함경감사겸병마수군절도사(特進咸鏡監司兼兵馬水軍節度使), 순찰사(巡察使), 함흥부윤(咸興府尹) 등을 지낸 최진손(崔震孫)이 그 현조(顯祖)이다.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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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검산동에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산하의 김제 지사.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제지사는 국민의 질병·부상에 대한 예방·진단·치료·재활과 출산·사망 및 건강 증진에 대하여 보험 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 보건을 향상시키고 사회 보장을 증진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특수 공법인으로, 「국민건강보험법」 및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에 규정된 사업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설립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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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전국합기도연합회 소속 김제 지역 사무국. 국민생활체육 전북합기도연합회 김제사무국은 합기도를 생활체육으로 활성화시켜 김제시민의 건강을 도모하고 활기 있는 여가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1999년 1월 설립되었다. 국민생활체육 전북합기도연합회 김제사무국은 매년 전라북도 합기도 도지사기 대회, 각 시군 대회, 도지사기 생활체육대회, 한마당대축전 등을 개최하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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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와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 정읍시 산외면 상두리에 걸쳐 있는 산. 국사봉(國師峰)은 주변 마을에서 선비가 많이 배출되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국사봉하면 깃대봉, 백운산, 영취산 등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이름이 가장 많은 산 중의 하나이다. 전라북도 지역만 해도 국사봉이란 이름을 가진 산은 김제시 모악산 정상, 무주군 부남면의 국사봉, 임실군 운암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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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와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 정읍시 산외면 상두리에 걸쳐 있는 산. 국사봉(國師峰)은 주변 마을에서 선비가 많이 배출되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국사봉하면 깃대봉, 백운산, 영취산 등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이름이 가장 많은 산 중의 하나이다. 전라북도 지역만 해도 국사봉이란 이름을 가진 산은 김제시 모악산 정상, 무주군 부남면의 국사봉, 임실군 운암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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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 귀신사(歸信寺)는 676년(문무왕 16)에 의상대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백제 법왕 때 왕실의 내원사로 처음 세워졌다는 주장도 있다. 창건 당시의 명칭은 국신사(國信寺)였다고 한다. 그 후 통일신라 말기 도윤(道允)이 중창한 뒤 귀신사로 개칭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원명국사[1090~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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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조상 대대로 전승된 고유한 전통음악. 국악을 크게 분류하면 궁정악(宮廷樂)과 민속악(民俗樂)으로 나눌 수 있다. 궁정음악에는 악장(樂章)이 있고, 기악(器樂)에는 제례악(祭禮樂)·연예악(宴禮樂)·군악(軍樂) 등이 있다. 민속음악에는 성악(聲樂)과 기악이 있는데 이를 다시 나누면 성악에는 가곡(歌曲)·가사(歌詞)·시조(時調)·판소리·잡가(雜歌)·민요(民謠)·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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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신종교인 일관도계의 한 교파. 일관도(一貫道)란 1947년 중국인 이덕복(李德福)·장서전(張瑞荃)·김은선(金恩善) 등에 의하여 중국에서 유입된 외래 종교로, 유불선(儒佛仙)을 융합하여 일관한다는 뜻에서 일관도라 한다. 세 사람은 입국 초기 각기 활동하였는데, 중국에서 건너와 각기 활동하는 세 사람을 본 김복당(金福堂)이 1952년 부산에서 도덕기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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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신종교인 일관도계의 한 교파. 일관도(一貫道)란 1947년 중국인 이덕복(李德福)·장서전(張瑞荃)·김은선(金恩善) 등에 의하여 중국에서 유입된 외래 종교로, 유불선(儒佛仙)을 융합하여 일관한다는 뜻에서 일관도라 한다. 세 사람은 입국 초기 각기 활동하였는데, 중국에서 건너와 각기 활동하는 세 사람을 본 김복당(金福堂)이 1952년 부산에서 도덕기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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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유학자. 송기면(宋基冕)의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군장(君章), 호는 유재(裕齋)이다. 1882년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 요교마을에서 아버지 송응섭(宋應燮)과 어머니 전주최씨 사이에서 5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절의와 순국의 의리를 강조한 교육자이자 만인에게 사표(師表)가 되는 호남의 거유(巨儒)로서 숭앙받았다. 송기면은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으며,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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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옥정리 동진강에 있는 다리. 군포교[상]는 길이 841.3m, 폭 9.7m, 유효 폭 8.7m, 높이 4.0m이며, 상부 구조 형식은 STB, 하부 구조 형식은 TP, 설계 하중은 DB-24이다. 이 다리의 교통량은 2009년 현재 3,586회이다. 군포교[하]는 백산교와 연결되어 길이 841.3m, 폭 9.8m, 유효 폭 9.3m, 높이 4.0m이며, 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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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와 금산면 용산리, 청도리에 걸쳐 있는 산. 구성산(九城山)은 한자로 아홉 구(九), 성 성(城)을 써서, 아홉 개 산봉우리에 성을 쌓아 적의 침입을 막았던 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역 주민에 의하면 굴성산으로 불렀다고도 한다. 정상의 서편 100m 지점의 헬기장이 있는 상봉과 구성산 줄기와 봉두산(鳳頭山) 주위에 성을 쌓고 적군의 침입을 막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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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밭이나 논을 가는 데 쓰는 농기구. 극젱이는 논에 쓰기도 하지만 주로 밭을 가는 데 쓴다. 바닥이 좁고 험한 곳에서 얕게 갈 때, 또는 쟁기로 갈아 놓은 땅에 극젱이를 끌어서 골을 타기도 한다. 쟁기로 갈면 볏밥이 한쪽으로만 갈려 나가나, 극젱이를 쓰면 양쪽으로 나가기 때문에 감자밭 따위를 매는 데 편리하다. 극젱이는 쟁기보다 힘이 약한 게 흠이다. 토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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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무당이 인간의 길흉화복을 위해 행하는 무속 제의. 굿이란 무당이 원시종교적 관념에 따라 제물과 가무와 소원을 동반하여 신과 함께 자리하고 소통하는 큰 규모의 무속 제의이다. 음식을 차려 놓고 노래를 부르며 춤도 추면서 귀신에게 인간의 길흉화복을 조절하여 달라고 빈다. 굿은 목적에 따라서 개인굿과 공동체를 위한 마을굿이 있다. 개인굿으로는 천신굿·안택굿·재숫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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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농가에서 말이나 소의 먹이를 담는 나무로 만든 그릇. 말구유는 구수[전라북도], 구시[경상남도], 궁이[강원도] 등으로 불린다. 통나무를 파서 구유를 만들었을지라도 이를 바로 쓰면 터지기 때문에 2~3년 동안 그늘에 두어 오줌 따위를 받아 두었다가 사용한다. 이러한 예비 구유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사랑채 부근에 두고 오줌을 받는데, 이를 오줌 구유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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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거나 녹이기 위하여 화덕에 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 풀무는 다른 말로 ‘궤풀무’라고도 하는데, 이는 생긴 모습이 마치 상자 모양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또한 지방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이 쓰여 지는데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는 ‘불메’라고 하며, 제주도에서는 손풀무를 ‘불미’, 발풀무를 ‘발판불미’라고 한다. 또한 농사짓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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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 귀신사(歸信寺)는 676년(문무왕 16)에 의상대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백제 법왕 때 왕실의 내원사로 처음 세워졌다는 주장도 있다. 창건 당시의 명칭은 국신사(國信寺)였다고 한다. 그 후 통일신라 말기 도윤(道允)이 중창한 뒤 귀신사로 개칭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원명국사[1090~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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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귀신사의 불전. 귀신사는 676년(문무왕 16) 의상대사가 창건하였고 고려시대 원명국사(圓明國師)가 중건하였는데, 당시의 명칭은 구순사(拘脣寺)였다. 현재의 귀신사는 1873년(고종 10) 춘봉(春峰)이 고쳐 지으면서 붙인 이름이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은 부처의 광명이 어디에나 두루 비치게 한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으로 대광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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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귀신사 앞에 있는 고려시대 승탑.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며 그 유골이나 사리(舍利)를 모시는 묘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당나라로부터 선종이 들어온 9세기 이후에 각 구산선문(九山禪門)에서 법통(法統)이 이어지면서 불상 숭배보다는 조사(祖師)들의 사리와 유골을 담은 묘탑이 중요한 예배 대상이 되어 많은 부도가 건립되었다. 일반적으로 부도는 석탑과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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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귀신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수(石獸). 현재의 귀신사는 백제가 망하고 16년 뒤인 676년 국신사(國信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며 고려시대에는 구순사로 바뀌었다가 조선시대에 귀신사(歸信寺)로 바뀌었다. 귀신사 석수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석수가 놓여 있는 지형은 모악산의 자락에서 구순혈(狗脣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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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귀신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 660년 백제가 멸망한 뒤 676년(신라 문무왕 16)에 백제 정신이 강하게 남아 있던 전주[당시 전주 관할]와 금산사 바로 가까운 곳에 국신사(國信寺)를 창건하였는데 바로 이 시기에 탑도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귀신사 경내 대적광전 바로 뒤편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약간 넓은 공간이 있고, 여기에 삼층석탑이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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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귀신사에 있는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비로자나불은 부처의 진신(眞身)을 나타내는 존칭이다. 『화엄경』의 주존불로서 부처의 광명이 모든 곳에 두루 비치며 그 불신(佛身)에는 모든 세계를 포용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좌측에 있는 약사불은 질병의 고통을 없애 주는 부처이며, 오른쪽의 아미타불은 서방 극락세계에 살면서 중생을 위해 자비를 베푸는 부처이다. 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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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서예가. 최규상(崔圭祥)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호는 춘곡(春谷)·설송(雪松)·설하(雪霞), 자는 백심(伯心)이다. 초명은 규하(圭夏)로 지었으나 후에 보근(輔根)이라 불렀다. 호는 처음에는 춘곡(春谷)으로 불렀다가 전주로 이거하며 설송으로 불렀고, 말년에는 설하(雪霞)라 하였다. 당호는 노하당주인(老霞堂主人) 또는 취묵헌주인(醉墨軒主人)이라 하였다. 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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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알곡을 훑어 내는 농기구. 나락홀태는 벼를 훑어 내는 데 쓰며 ‘그네’라고도 한다. 한 움큼의 벼 이삭을 두 손에 쥐고 발판을 밟은 다음 날 사이로 훑으면 낱알이 떨어진다. 제주도에서는 1930년경부터 사용되었다고 한다. 주로 보리 등을 이고 훑어 낼 때 사용한다. 나락홀태는 보리홀태와 달리 날이 호형(弧形)으로 배열되어 있다. 통나무를 대충 다듬고 지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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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아녀자들이 그네를 뛰면서 즐기는 놀이. 그네뛰기는 큰 나무의 가지나 두 기둥의 가로 지른 막대에 길게 두 줄을 매어 늘이고, 줄 아래에 밑싣개[앉을깨]를 걸쳐 놓고 올라가서 몸을 날려 앞으로 나아갔다가 뒤로 물러났다가 하는 민속놀이이다. 이를 ‘반선희(半仙戱)’, ‘추천(鞦韆)’ 등이라고도 한다. 그네뛰기는 중국에서는 한나라와 당나라 때부터 성행했으며,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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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손을 불빛에 비추어 벽에 그림자를 만들며 노는 놀이, 또는 술래가 다른 아이들의 그림자를 쫓아다니는 민속놀이. 그림자놀이는 손·인형 등으로 물건의 시늉을 불빛에 비추어 벽에 마치 실물 모양과 비슷한 그림자를 만들면서 즐기는 놀이이다. 또한 그림자가 생기는 맑은 날 술래가 된 아이가 다른 아이들의 그림자를 쫓아다니며 밟으려는 그림자밟기놀이를 지칭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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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밭이나 논을 가는 데 쓰는 농기구. 극젱이는 논에 쓰기도 하지만 주로 밭을 가는 데 쓴다. 바닥이 좁고 험한 곳에서 얕게 갈 때, 또는 쟁기로 갈아 놓은 땅에 극젱이를 끌어서 골을 타기도 한다. 쟁기로 갈면 볏밥이 한쪽으로만 갈려 나가나, 극젱이를 쓰면 양쪽으로 나가기 때문에 감자밭 따위를 매는 데 편리하다. 극젱이는 쟁기보다 힘이 약한 게 흠이다. 토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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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에서 태어난 근세 실학의 대가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은 근대 성리학자로서 크게 이름을 떨쳤다. 김제 지역의 학풍과 학통을 크게 형성한 대학자로 수많은 제자를 길러 냈으며, 그 학문적 영향력이 지금까지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석정 이정직은 1841년(헌종 7)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 요교[일명 여꾸다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신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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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를 중심으로 실시된 계몽주의 교육. 교육사적 견지에서 근대교육이라 하면 중세의 봉건적 또는 도제식 교육 형식을 거쳐 계몽사조를 기초로 나타난 계몽주의 교육을 말하며, 제도적으로는 공교육 체제 또는 의무 교육제가 나타난 것으로 18세기의 일이다. 한국의 경우는 근대를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다소 견해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1880년대부터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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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지대가 낮아 동진강(東津江) 물이 들어오고, 그 물빛이 금과 같이 반짝이므로 ‘금(金)’자와 동진강의 ‘강(江)’자를 따서 금강리(金江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김제군 부량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후포리·전포리·신평리·대장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금강리라 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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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1914년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행정구역 상 옛 명칭. 갑오·을미개혁기인 1895년(고종 32)에 조선 정부는 행정체계 근대화 추진의 일환으로 기존의 지방행정구역을 조정하였다. 1895년에 금구군과 만경군을 분할하여 전주부 금구군이 되었고, 1896년에 13도제를 실시하면서 금구군은 전라북도에 속한 26개 군 중 3등군에 포함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금구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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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환곡 폐단의 시정을 요구하며 일으킨 난. 삼정(三政)이 문란해지면서 1862년(철종 13) 2월 4일 경상도 단성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이 일련의 사건을 임술농민항쟁이라 하는데, 전라도에서는 3월 27일 익산 봉기를 시작으로 함평, 고산, 부안 지역에서 잇달아 일어났다. 전라도의 어수선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선무사 조구하(趙龜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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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정유재란 때 원신과 김언공이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 지역에서 왜군을 궤멸시킨 전투. 일본은 명과의 강화가 결렬되자 1597년(선조 30) 1~2월에 14만5천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재차 조선을 침략하였다. 금구대첩(金溝大捷)의 목적은 직산전투에서 패퇴한 왜군이 정읍을 향하여 남주할 것을 예상하여 전라도의 조방장(助防將)인 원신과 김언공(金彦恭)의 군사로 기습 공격을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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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속하는 법정리. 김제·금산·금천 등 이름에 쇠 ‘금(金)’자가 들어간 지역에서 사금(砂金)이 많이 채취된 것으로 미루어, 금구(金溝) 또한 하천과 산에서 사금이 많이 나온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추측된다. 조선 말기 금구군 동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성길리·장교리·상학리를 병합하여 금구리라 하고 김제군 금구면에 편입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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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속하는 법정리. 김제·금산·금천 등 이름에 쇠 ‘금(金)’자가 들어간 지역에서 사금(砂金)이 많이 채취된 것으로 미루어, 금구(金溝) 또한 하천과 산에서 사금이 많이 나온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추측된다. 조선 말기 금구군 동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성길리·장교리·상학리를 병합하여 금구리라 하고 김제군 금구면에 편입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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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행정구역. 김제·금산·금천 등 지명에 쇠 ‘금(金)’자가 들어간 지역에서 사금(砂金)이 많이 채취된 것으로 미루어, 금구(金溝) 또한 하천과 산에서 사금이 많이 나온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추측된다. 백제시대에 구지지산현(仇知只山縣),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금구현(金溝縣), 조선시대에 전주속현 지역이었다. 1910년 금구군으로 승격되어 10개 면을 관할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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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환곡 폐단의 시정을 요구하며 일으킨 난. 삼정(三政)이 문란해지면서 1862년(철종 13) 2월 4일 경상도 단성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이 일련의 사건을 임술농민항쟁이라 하는데, 전라도에서는 3월 27일 익산 봉기를 시작으로 함평, 고산, 부안 지역에서 잇달아 일어났다. 전라도의 어수선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선무사 조구하(趙龜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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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와 월전리 경계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 금구산성의 축성 연대와 건립 경위를 명확히 밝혀 주는 문헌 자료는 없다. 관련 기록 중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 있는데 여기서는 “봉두산 재현동2리(鳳頭山在縣東二里)”라 하였고 금구산성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다. 금구산성에 대하여 기록된 자료로는 『금구읍지(金溝邑誌)』와 김정호의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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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서도리에 있던 개항기 사립 보통학교. 변해 가는 시대에 적응하고, 이를 주체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인재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였다. 1907년(순종 1) 장태수(張泰秀)[1841~1910]는 고향에서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전라북도 금구군 서도면 상신리[현 금구면 서도리]에 교실 7칸짜리의 금구신명학교를 세우고, 학생 200여 명을 모아 개교식을 거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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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을 시조로 하고, 온신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온씨(溫氏)의 시조는 고구려의 온달(溫達) 장군이고, 금구온씨(金溝溫氏)는 온신(溫信)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온신의 호는 수신재(守愼齋)이며, 왕명으로 금구에 와서 살게 되면서 후손들이 금구를 본관으로 삼았다. 김제시 금구면의 옛 이름은 봉성(鳳城)으로, 금구온씨는 봉성온씨(鳳城溫氏)라고도 부른다. 온신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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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전자권이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합되기 전 금구면의 실상을 조사하여 기록으로 남긴 읍지. 금구면은 일제강점기까지 김제군의 군청소재지였다. 이 때문에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전란으로 인해 대부분의 문화재들이 약탈되거나 소실되었다. 이에 금구면과 관련하여 남아 있는 문헌들과 전승 문화를 기록으로 보존함과 동시에 그 동안 금구면의 변화된 자료를 수집하고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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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를 시조 및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금구이씨(金溝李氏)의 시조는 이주(李澍)로, 금구는 원래 백제의 구지지산현(仇知只山縣)인데 신라 때 금구가 되었다. 이주가 봉산군(鳳山君)[봉산은 현재의 김제시 금구면]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금구를 본관으로 삼았다. 고려시대 홍문관대제학을 지낸 시조 이주가 금구 지역에 낙향하면서 후손들이 이곳에 세거하게 되었다. 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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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에서 발원하여 봉남면 종덕리에서 원평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금구천이 발원하는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는 본래 금구군 동도면 지역으로 구성산에서 흘러내린 급류를 느리게 하려고 선바위를 세워 놓았기 때문에 선바우 또는 선암이라 했다. 하지만 1914년 일제강점기에 영천리와 전주군 우림면 축령리를 합하여 선암리로 이름을 바꾸고 김제군 금구면에 편입되었다. 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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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에 있는 공립 초·중학교. 선한 삶을 실천하며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인, 스스로 공부하고 지혜로운 생각을 하는 창의인, 꿈을 갖고 새로움을 찾는 폭넓은 개척인, 우리 것을 섬기고 멋을 즐기는 문화인,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바른 습관을 갖는 개성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금구초등학교의 교훈은 ‘슬기롭게 배우고[지] 바르게 행동하며[덕] 건강하게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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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에 있는 공립 초·중학교. 선한 삶을 실천하며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인, 스스로 공부하고 지혜로운 생각을 하는 창의인, 꿈을 갖고 새로움을 찾는 폭넓은 개척인, 우리 것을 섬기고 멋을 즐기는 문화인,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바른 습관을 갖는 개성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금구초등학교의 교훈은 ‘슬기롭게 배우고[지] 바르게 행동하며[덕] 건강하게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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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에 있는 고려 후기 향교. 금구향교(金溝鄕校) 창건 당시는 금구동헌에서 동쪽으로 2㎞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 서혈산(西血山) 아래에 중건하였으나 지세가 좋지 못하여 1676년(숙종 2)에 지금의 위치인 금구면 금구리 152번지로 옮겨 중건하였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금구향교가 세 번째 옮겨 지금 자리에 왔다고 하며 전에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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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에 있는 고려 후기 금구향교의 대성전. 향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 건축으로 공자나 그의 제자 그리고 역대 성현들의 가르침을 기리고 공부하던 곳이다. 조선시대는 각 군·현마다 향교가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으며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금구향교(金溝鄕校) 대성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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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1895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설치된 행정구역. 신라가 백제를 병합한 후 백제 영토는 685년(신문왕 5)까지 신라식 4주 3소경 및 다수 군·현으로 재편되었다. 그와 함께 각 고을의 이름도 당나라가 중국식으로 고쳤던 주·현의 이름이 복구되었지만, 상당수가 점차 신라화하였다. 신라는 757년(경덕왕 16)에 당의 방식을 따라 주·군·현 간의 영속 체계를 강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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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종교적·도덕적인 이유로 사용이 금지되거나 꺼려지는 언어 표현. 아득히 먼 옛날부터 금기어·속신이 발생하여 전승되었으며, 금기에 대한 수많은 말들이 파생(派生)·조어(造語)되어 이를 불문율처럼 여겨 지켜 내려왔다. 금기어는 금지되는 행동과 함께 금기에 속한다. 금기는 특정한 인물·사물·현상·언어·행위 등이 신성시되거나, 또는 두렵다고 신봉함으로써 그 대상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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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스스로 공부하며 자신의 미래를 열어 가는 자주인, 건전한 사고와 비판력을 가지고 슬기롭게 생각하는 실력인, 다르게 생각하고 깊이 탐구하는 탐구인, 전통과 문화를 알고 사랑하며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정서인,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의지가 강한 건강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새롭게, 바르게, 튼튼하게’이다.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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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스스로 공부하며 자신의 미래를 열어 가는 자주인, 건전한 사고와 비판력을 가지고 슬기롭게 생각하는 실력인, 다르게 생각하고 깊이 탐구하는 탐구인, 전통과 문화를 알고 사랑하며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정서인,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의지가 강한 건강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새롭게, 바르게, 튼튼하게’이다.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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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 상가 밀집 지역의 옛지명. 본정통(本町通)은 일제강점기 때 김제 지역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였던 서독안경사거리[전북지업사, 과거 박약국 간이 배차장]~안경박사사거리~금만사거리 구간을 말한다. 금만쇼핑거리라 부르기도 하였다[박약국사거리까지를 말하기도 함]. 일제강점기에 혼마찌라고 하다가 해방 이후 본정통이라 불렀는데, 당시 김제에서 가장 번화했던 상가 밀집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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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수록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금복사(金福寺)는 1930년대에 창건되었으나 창건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전하지 않는다. 1986년에 부임한 도선이 대웅전 등을 증축하였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의 말사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대웅전을 비롯하여 마당에는 육층석탑과 미륵불상,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최근에는 금복사 불상 및 복장유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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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수록리에 있는 금복사의 불상과 복장유물.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인 금복사(金福寺)에서 조성된 지 300여 년 된 불상과 그 불상의 복장에 있는 유물이 공개되어 일반에 알려지게 되었다. 복장 유물은 사리와 사리함, 국한문 혼용의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등이다. 복장유물은 사리 2과와 사리를 보관하고 있는 사리함, 국한문 혼용의 『묘법연화경』 4권 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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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과 전주시 중인동, 완주군 구이면에 걸쳐 있는 산. 호남의 조망대인 모악산(母岳山)은 백두대간 장수군 영취산에서 갈라져 나온 금남호남정맥이 진안군, 완주군 경계의 주화산에서 두 갈래로 나누어져 북으로 금남정맥을 보내고, 호남정맥이 남쪽으로 가다가 운암 초당골에서 나눈 모악기맥이 뿌리이다. 이 모악기맥이 15.8㎞를 달려서 엄재, 국사봉을 거쳐 모악산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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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쌍용리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 예절과 질서를 존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도덕인, 기초 학력과 탐구력을 신장하여 창의성을 기르는 면학인, 정신과 신체가 건강하고 인격이 성숙한 건강인, 지식 정보화·세계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새롭게 생각하고 바르게 실행하자’이다. 1955년 5월 2일 금산상업고등학교 3학급 인가를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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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쌍용리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 예절과 질서를 존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도덕인, 기초 학력과 탐구력을 신장하여 창의성을 기르는 면학인, 정신과 신체가 건강하고 인격이 성숙한 건강인, 지식 정보화·세계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새롭게 생각하고 바르게 실행하자’이다. 1955년 5월 2일 금산상업고등학교 3학급 인가를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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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개항기에 설립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민족적 정서가 강한 종교와 사상의 흐름이 지속된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처음으로 기독교의 교리가 전파된 것은 군산선교부와 전주선교부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에 의해서였다. 1897년 전라북도 김제군 공덕면 송지동에 사는 송원선·강문성 등이 김제의 서남 지방을 담당하였던 선교사 전위렴[W.M.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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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산리에 있는 농업협동조합. 농업협동조합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처지에 있는 농민들이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물자의 생산·구매·판매·소비 등의 일부 또는 전부를 협동으로 영위하는 단체이다. 금산농업협동조합은 농업인들에게 영농 활동에 필요한 각종 편의 및 효율적인 영농 서비스를 제공하여 농업인들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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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산리에 있는 농업협동조합. 농업협동조합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처지에 있는 농민들이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물자의 생산·구매·판매·소비 등의 일부 또는 전부를 협동으로 영위하는 단체이다. 금산농업협동조합은 농업인들에게 영농 활동에 필요한 각종 편의 및 효율적인 영농 서비스를 제공하여 농업인들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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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금산사(金山寺)에서 이름을 따서 금산리(金山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금구군 수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금성리·용평리·용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금산리라 하고 김제군 수류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수류면이 금산면으로 개칭됨에 따라 김제군 금산면이 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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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삼국시대 성터. 금산리 금산사 성은 삼국시대에 금산사를 보호하기 위하여 절 입구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20년대 말까지만 해도 아치형의 석조물인 성문 주변에 남북 방향으로 성벽이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성문만이 남아 있다. 성문의 북쪽으로는 개천이 흐르고 있고 개천을 건너 편평한 평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 일대에 축대를 쌓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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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삼국시대 성터. 금산리 금산사 성은 삼국시대에 금산사를 보호하기 위하여 절 입구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20년대 말까지만 해도 아치형의 석조물인 성문 주변에 남북 방향으로 성벽이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성문만이 남아 있다. 성문의 북쪽으로는 개천이 흐르고 있고 개천을 건너 편평한 평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 일대에 축대를 쌓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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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가마터. 금산리 배제골 도요지는 고려 후기에 해당하는 14세기 말 청자 가마로 유명하였으며, 15세기에는 분청 가마로, 19세기에는 백자 가마로 잘 알려진 곳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도 김제 금산면에서 자기가 생산되었음을 보여주는 기사가 실려 있다. 그러나 근대 이후 대규모 사과밭이 조성됨에 따라 도요지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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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가마터. 금산리 심원암골 도요지에서는 고려시대인 11~14세기에는 청자를 구웠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15~16세기에는 분청사기와 백자를 주로 구웠다고 한다. 심원암(深源庵)과 청룡사(靑龍寺)로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심원암 방향으로 약 50m 지점에 있는 밭이 가마가 있던 곳이다. 1996년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전라북도 지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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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가마터. 금산리 안양마을 도요지에서는 고려 후기인 14세기에는 주로 청자를 구웠으며, 조선시대로 들어와 15~16세기에는 분청사기, 18~19세기에는 백자를 구웠다고 한다.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안양마을 한가운데 넓게 조성된 배밭이 예전에 가마가 있던 곳이다. 1996년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전라북도 지역의 조선시대 분청사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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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가마터. 금산리 안양마을 북방골 도요지에서는 15세기에 주로 분청사기를 구웠다고 하나, 청련암(靑蓮庵)을 신축하면서 주변 지형이 완전히 변형되어 가마의 흔적은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밭에서 지금도 자기편과 초벌구이편이 발견되어 이곳에서 예전에 가마가 운영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청련암에서 안양마을으로 약 20m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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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가마터. 금산리 안양마을 신원양지 도요지에서는 고려 후기인 14세기에는 주로 청자를 구웠으며, 조선 전기에는 분청사기를 구웠고, 그 뒤 18~19세기에 이르기까지 백자를 생산하였다고 한다.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안양마을에서 청련암(靑蓮庵) 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있는 사과밭 일대가 금산리 안양마을 신원양지 도요지로 추정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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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가마터. 금산리 안양마을 청련암골 도요지는 고려 후기인 14세기경 가마가 설치되어 주로 청자를 구웠으며, 조선 전기인 15세기에는 분청사기를 생산하였고, 이후 조선 후기까지 백자를 생산하였다.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안양마을에서 산속으로 약 600m 지점에 청련암(靑蓮庵)이 있는데, 금산리 안양마을 청련암골 도요지는 청련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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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가마터. 금산리 용방동 도요지는 고려 후기에 설치되어 청자를 생산한 곳으로, 15~16세기 이후에는 주로 분청사기와 백자를 구웠다고 알려져 있다. 금산리 용방동 도요지는 금산사(金山寺) 주차장에서 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용방골이라고 불리는 골짜기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1996년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전라북도 지역의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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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가마터. 금산리 용방동 도요지는 고려 후기에 설치되어 청자를 생산한 곳으로, 15~16세기 이후에는 주로 분청사기와 백자를 구웠다고 알려져 있다. 금산리 용방동 도요지는 금산사(金山寺) 주차장에서 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용방골이라고 불리는 골짜기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1996년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전라북도 지역의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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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함평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금산리 용화동 도요지에서 출토되고 있는 분청자기와 백자편, 도지미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조선 전기부터 이 지역에서는 자기가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철탑이 세워지기 전에는 그 아래쪽으로 가마굴이 있었다고 한다. 금산리 용화동 도요지가 있는 곳은 금산리 함평마을의 서쪽 해발 150m 야산의 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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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행정구역. 1935년 금산사(金山寺)에서 이름을 따서 금산면(金山面)이라 하였다. 백제시대에 서이현, 통일신라시대에 이서현, 고려시대에 거야현 지역이었다. 조선 말기 금구군 수류면 지역으로 금성·용평·용정·장흥·율치·상화·금곡·구륭·시성·봉곡·봉의·봉암·계암·성암·용은·용흥·월곡·구암·구호·용성·무평·선동·원평 등 23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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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金山寺)는 전라북도의 최대 사찰로 여러 가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창건에 관해서도 많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지만 『금산사지』를 근거로 백제 법왕 때 창건한 사찰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오랜 세월을 지내온 동안 수많은 고승을 배출하면서 불교계의 지도적 역할을 담당해 온 유서 깊은 사찰이다. 금산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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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에 있는 고려시대 원구 터. 금산사는 오랜 세월 법등이 이어져오면서 많은 전각이 새로 들어서고 중수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이름만 전하는 전각이 허다하다. 1598년(선조 31)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가람의 전각은 다 옮겨 적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 기록을 살펴보면 크게 대사구(大寺區)·봉천원구(奉天院區)·광교원구(廣敎院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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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에 있는 고려시대 원구 터. 금산사는 오랜 세월 법등이 이어져오면서 많은 전각이 새로 들어서고 중수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이름만 전하는 전각이 허다하다. 1598년(선조 31)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가람의 전각은 다 옮겨 적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 기록을 살펴보면 크게 대사구(大寺區)·봉천원구(奉天院區)·광교원구(廣敎院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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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에 있는 고려시대 노주(露柱). 김제 금산사 노주는 금산사 경내의 대적광전과 대장각의 중간에 석련대와 대칭을 이루고 있다. 형태에 따라 노주라고 하였으나 원래 어떤 용도로 사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상부에 놓인 보주(寶珠)만 없으면 방형의 대좌처럼 조성된 특이한 석조물이다. 지대석은 사각형으로서 하나의 석재에 2단으로 조각되었는데, 아랫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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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당간지주. 당간은 절에 중요한 행사나 법회가 있을 때 깃발을 달거나 사찰의 괘불탱화를 걸어두는 장대를 말하며, 당간지주는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좌우에 세운 기둥이다. 당간지주를 보면 그 주변이 사찰이 있는 신성한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돌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지만 철, 금동, 나무로도 만들었다. 2개의 기둥을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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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금산사의 불전. 금산사 대장전은 금산사 미륵전 앞 오른쪽에 위치하였던 목조탑으로 미륵전을 장엄하게 꾸며 주는 기능을 하였는데 후에 탑 안에 불상이나 경전을 넣는 것이 습관화되자 탑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대장전이라는 불전으로 성격이 변하였다. 금산사 경내 금산사 대적광전 왼편에 자리 잡고 동쪽의 금산사 미륵전과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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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전. 대적광전(大寂光殿)은 원래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보신불(報身佛)인 아미타불과, 화신불(化身佛)인 석가모니불, 즉 삼신불(三身佛)을 봉안함으로써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를 상징한다. 이 금산사 대적광전(金山寺大寂光殿)에도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측에 아마타여래와 석가모니불을, 우측에 노사나불과 약사여래를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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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 대적광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시대 불화. 금산사 대적광전 오불회도는 금산사에 봉안된 다섯 폭의 조선시대 불화로 정확한 제작 시기나 제작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이 다섯 폭 가운데 「노사나불화(廬舍那佛畵)」는 1987년 12월 대적광전에 화재가 일어나 소실되어 그 뒤 승려 석정(石鼎)이 새롭게 그려서 봉안하였다. 금산사 대적광전 오불회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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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불화. 화기(畵記)에 의하면, 금산사 명부전 시왕도는 풍곡당(豊谷堂) 덕린(德麟), 해운당(海雲堂) 익찬(益贊), 월허당(月虛堂) 준언(俊彦), 반월당(槃月堂) 해선(海詵) 등의 승려들이 편수가 되어 1861년(철종 12) 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에 있는 도갑사(道岬寺)에서 20명의 화원과 함께 그린 다음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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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금산사의 불전. 금산사(金山寺)는 전라북도 내 최대의 사찰로서 여러 가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후백제의 견훤(甄萱)[867~935]이 창건하였다고 하는 전설이 있으며,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진표(眞表)가 12살 때 금산사에서 출가하였다고 전하고 있어서 그 이전부터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금산사는 창건 당시에는 소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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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에 있는 고려 전기 석종형 사리탑과 금강계단. 금산사는 모악산 남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전라북도 내 최대의 사찰로서 여러 가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후백제의 견훤이 창건하였다고 하는 전설이 있으며,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진표율사(眞表律師)가 12세 때 이곳에서 출가하였다고 전하고 있어서 그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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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에 있는 조선시대 불전. 우리나라 사찰에서 누각 건물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부터이다. 잦은 외침에 따라 승병이 조직되고 사찰이 의승군(義僧軍)의 결집 장소가 되면서 군사적 필요에 의해 누각이 번성하였다. 이후 승병이 사라지면서 누각 건물은 법회와 강설, 대중 집회의 장소로 사용되었고, 오늘날에는 이러한 실용적 기능보다는 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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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등. 김제 금산사 석등은 옥개석과 상대석, 하대석 등은 신라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화창석, 중대석 등은 옥개석과 하대석의 받침에 맞지 않는 부정형(不定形)이며, 양식도 후세에 내려오면서 없어진 부재를 보완한 것이다. 옥개석과 상륜부 등은 원형으로 고려시대에 해당한다. 김제 금산사 미륵전 오른쪽에는 766년(신라 혜공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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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 연화 대좌. 석련대는 석조 연화 대좌를 줄여 이르는 말로, 불상을 올려놓는 돌로 만든 받침대이다. 사적기에 따르면 776년(신라 혜공왕 12)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금산사를 법상종의 근본 도량으로 삼으면서 미륵장육상(彌勒丈六像)을 주성(鑄成)하여 같은 해 5월 1일에 3층 미륵장육전에 안치하였다고 하였다. 당시의 미륵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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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 심원암에 있는 고려 시대 삼층석탑. 『금산사사적(金山寺事蹟)』에 따르면, 금산사는 600년대 창건되었는데, 599년(백제 법왕 즉위년)에 칙령으로 살생을 금하고 그 이듬해에 이 절을 창건하여 38인의 승려를 득도시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금산사 심원암은 1635년(인조 13) 수문선사(守文禪師)가 창설했는데 지금의 암자는 근래에 건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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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에 있는 고려 전기 오층석탑. 탑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하는 건축물로 솔탑파(率塔婆), 수두파(藪斗婆), 탑파(塔婆)라고도 한다. 원래는 부처의 사리를 보관하기 위해 돌이나 흙 등을 높게 쌓아올린 무덤을 말한다. 처음에는 사원의 중심에 탑 1기를 세워 불사리를 봉안하였으나 후에는 2~3기를 같이 세우기도 하고 사찰 경내가 아닌 곳에 세우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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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 대적광전 앞에 있는 고려 전기 석탑. 금산사는 임진왜란 이전 거대한 사역(寺域)에 대사(大寺)·봉천원(奉天院)·광교원(廣敎院)의 3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총 86채의 당우가 임진왜란의 참화로 없어진 뒤 40년 만에 대사 지역의 건물만 재건되었고, 나머지 사지(寺址)는 절의 동북쪽 넓은 지역에 유지만 전해지고 있다. 김제 금산사 육각다층석탑은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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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에서 개최되는 산사 체험 프로그램. 금산사 템플스테이는 산사의 전통문화와 불교의 진수를 일반인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2004년부터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2007년 4,000명, 2008년 5,000여 명 등 매년 참가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금산사 템플스테이가 이처럼 인기를 얻는 것은 깨끗한 숙박 시설과 참선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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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에 있는 고려 전기 혜덕왕사의 탑비. 혜덕왕사(慧德王師)[1038~1096]는 고려 전기의 승려로, 속성은 이(李)고 이름은 소현(韶顯)이다. 11세 때 해안사(海安寺)의 지광국사(智光國師) 제자로 들어갔고, 1061년(문종 15) 경기도 개성의 송악산에 있는 왕륜사(王輪寺)에서 치러진 승과에서 합격하였다. 1079년(문종 33) 금산사의 주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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